잡지에서 읽은 시

격리의 격리/ 김정수

검지 정숙자 2024. 4. 24. 02:06

 

    격리의 격리

 

     김정수

 

 

  통째 집이 이사할 것만 같은 오후입니다

 

  반가움에 머물던 눈금이

  급격히

  당혹으로 기울자

  저울을 벗어난 발은 캄캄해집니다

 

  발이 하얀 모델은 앵글을 벗어나 영혼이 털리고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든 사물은 달라지지 않아요 느닷없는 사실만 울음 너머 쟁쟁합니다

  전파를 회피해도 바람이 다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무게중심을 잃어버린 방은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빠르게 변질되는 속성으로

  쉽게 양비론에 빠집니다

 

  동반 격리된 셔츠는 제대로 칩거에 들어갔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후통을 앓고 있는 규격 상자에서 빠져나온 지

  벌써 40년째입니다

 

  행동을 잃어버린 통증은 밀폐된 관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별들의 언저리에 가 닿습니다

 

  세 번 격리되니까 이젠 익숙해졌어요

  혼자가 아닌 둘

  둘이 아닌 하나의 모면입니다

 

  정적을 돌려 깎으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끝내 말하지 않은 청춘이 자리에 누워 있을까요

 

  그래봤자 TV에 시선을 고정한 돌멩이일 뿐입니다

  만지작거려도 소용없어

  기껏 몰랑한 어둠이 흘러나오겠지요

  비상을 준비하지 못한 위독한 여름밤입니다

 

  오래 잠복한 바이러스를 차단하면

  상상도 갇힙니다

     -전문(p. 38-39)

 

 

   시작노트> 전문: 반가운 손을 잡지 못하고 주먹만 맞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잡았던 돌멩이를 슬그머니 내려놓은 손입니다. 돌멩이에 감정을 실어 보내려 바람이 불고, 어둠이 찾아옵니다. 오래 고여 있습니다. 격리된 곳에서도 또 격리된 사람이 있습니다. 동반했던 그는 잠만 자고, 말도 갇혀 침묵은 길어집니다.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식도, 안부도 밀폐되어 캄캄합니다. 벽을 통과한 상상이 미로를 헤매고 있습니다. 관계를 차단하면, 멀어지거나 돌멩이를 잡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호흡이 곤란해집니다. 이 계절에는 다만 '안녕'합니다. (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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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10월(406)호 <신작특집> 에서

  * 김정수/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