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제10회 딩아돌하 작품상 수상작>
연두
신동옥
아름다운 시절에는
거짓부렁으로
슬픈 이야기를 지어 나누어 가졌다
온몸으로 흐느끼며
기둥을 감아 오르다가
댓돌에 스미어 번지던 봄빛
오래 버려둔 마당으로 잡풀이 옮아가고
홀씨 터럭 날리는 박석 위에
살림을 차린 고양이
주인을 잃은 처마 밑으로
예년의 제비가 돌아왔는데
지붕은 반나마 내려앉았고
아귀가 틀어진 문틈으로 보인다
더는 견딜 수 없던 그 언젠가
부러 나누었던 서글픈 이야기
그마저 이제는 꿈만 같아서
넘치는 설움을 봄빛에 비벼
고수레로 모셔둔 지붕 너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뒤꼍 대숲 언저리
새잎 곧 돋아나는 봄 한철
일없이 무성해 갈 꽃과 이파리의 계절
사이를 긋고 지나가는 소낙비에 물든다
기묘히도 흐렸던 하늘 갈라 터지는 구름장 아래로
눈부시게 빛나던
새잎 끄트머리 연두
-전문, 『딩아돌하』, 2023년-여름호
* 심사위원: 임승빈(시인, 주간) 김명희(평론가) 남승원(평론가) 이은규(시인)
※ 블로그 註: 심사위원 세 분이 各各 쓴 심사평은 책에서 일독 要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과 자유/ 딩하돌하 작품상_작품론(발췌)_ 전철희/ 문학평론가
신동옥 시인의 수상을 축하한다. 나는 작년 가을에 『딩아돌하』의 계간평(「인간에 대한 물음」)에서 신동옥 시인의 「못이 자라는 숲」을 중요하게 다뤘다. 이번에 우수작품상을 받은 작품 「연두」도 유사한 성격의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라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다. 이번 수상작에 대해 내가 품평을 한다면 이전의 계간평과 거의 같은 내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복은 재미 없으니, 이 글에서는 신동옥 시인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 느낌을 다소 방만하게 풀어내려 한다.
(···)
「연두」는 8개의 연으로 나눠진 작품이다. 1연은 의미삼장한 이야기가 던져지고, 그 뒤에는 줄곧 무심한 자연의 풍경이 묘사된다. "아름다운 시절에는/ 거짓부렁으로/ 슬픈 이야기를 지어 나누어 가졌다"라니. 여기에서 "아름다운 시절"은 무엇일까? 시의 화자가 꼭 시인과 일치하라는 법은 없지만, 이런 구절을 보면 독자는 시인 자신이 "거짓부렁으로 슬픈 이야기"를 지었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이 시인의 초기 시집들은 분명히 '슬픈 이야기'의 어조를 가졌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나는 앞서 이 시인의 '악공' 이미지 자체가 비극적인 것임을 지적했다.).
(···)
나는 지금까지 오직 「연두」 첫 번째 연에 대해서만 설명했을 뿐이다. 이 작품의 특징과 매력을 분석하려면 뒷부분의 서정적 묘사들이 애련한 과거에 대한 심상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라든가, 그 뒤에 제시되는 연둣빛 이미지가 갖는 의미(연두는 연한 녹색이다. 그것은 완벽한 초록이 되지는 못한 채 남아있는 식물들의 '미숙'한 상태를 암시하기도 할 것이다.)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냥 시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언하지 않겠다. 대신 나는, 신동옥 시인이 줄곧 현실을 넘어서 위해서 고투했고, 그 고투 때문에 고뇌하는 흔적을 시에서 계속 보여왔으며, 그런 태도가 자유롭다는 점만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뿐이다. 신동옥 시인의 지인이면서 독자인 나는 이 시인이 줄곧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자유롭기를 바라야 할지 아니면 평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기를 빌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시인은 계속 자유로울 것 같다. (p. 시 88-89/ 론 96(···) 102(···)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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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4-봄(70)호 <제10회 딩아돌하 작품상 수상작/ 작품론 > 에서
* 신동옥/ 전남 고흥 출생, 2001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악공, 아나키스트』『웃고 춤추고 여름하라』『고래가 되는 꿈』『밤이 계속될 거야』 『밤이 계속될 거야』『달나라의 장난 리부트』『앙코르』, 산문집『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 전철희/ 전남 광주 출생, 2010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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