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무사입니까?
진혜진
무협지 속 우리는
순간순간 죽지 못해 적이 됩니다
권법을 정독한 고수가 아니라서
말의 혈만 찌르는 자객들
서로에게 긍정만 겨누지 못합니다
태양 아래 우뚝 선 두 그림자 아래
당신의 긍정과 나의 긍정은 방향이 달라
말이 달리면
온통 찢어지는 세상 같아
우린 종로를 누비다 강호고등어구이집에서
간신히 두 젓가락을 든 무사가 됩니다
안녕의 맛이 이처럼 담백하니
무적의 고등어를 오늘의 진정한 고수로 인정합시다
말과 말을 거쳐 온 자객 하나, 자객 둘······
안녕의 목이 계속 베입니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 앞에서
가장으로부터 멀어지는 당신
안녕엔 착한 그림자와 착한 바람과 착한 지상이 필요한데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쓴 말들로
무성한 무림은 계속되어
우리의 안녕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전문(p.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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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기(17)호 <신작시> 에서
* 진혜진/ 2016년 ⟪경남신문⟫ &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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