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구한 _ 타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발췌)/ 화장(火葬) : 이영주

검지 정숙자 2024. 4. 6. 03:07

 

    화장火葬

 

     이영주

 

 

  여인이 강가에 앉아 탯줄을 태우고 있습니다

  아이의 목을 휘감던 탯줄을 잘라내고

  하얗게 질린 아이의 영혼을 먼 땅으로 보내기 위해

  여인은 바구니를 띄웁니다

  두 손을 모으고 폭염에 달아오른 별을 빨아들이다

  툭툭, 붉은 물집이 터지는 여인의 뒷목

  알 수 없는 주문이 물살에 떠밀리며 휘청거립니다

  타오르던 연기가 올라가 박힌 뜨거운 별들

  까맣게 물들어가는 하늘의 흉터들,

  여인이 불러낸 주문은 흉터 속에 봉인된 채 함께 썩어갑니다

  어디론가 떠밀려간 바구니의 목을 휘감고

  두꺼운 꼬리를 탁탁 내리치는 거친 물살

  온몸이 점점 녹아가는 여인은

  불구덩이를 끊임없이 쑤셔댑니다

  얼굴 없는 아이가 불길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걸어온 지친 소가

  강물에 머리를 담그로 자갈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열에 들뜬 콧김이 강바닥을 헤집으며

  흙기둥에 숨은 물고기를 찬찬히 달굽니다

  소는 오랫동안 머리를 흔들며 흙탕물을 휘젓습니다

  불쑥 솟아오른 봉분 위로 검은 별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갑자기 불에 덴 듯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들이받는 소

  번뜩이는 뿔에서 퍼져나온, 어둠 속에서 분해된

 

  빛의 마지막 파장

  늙은 소 한 마리가

  하늘의 입속으로 사라집니다

  참수된 머리 하나가 뚝, 떨어집니다

 

  붉은 흙탕물이 휩쓸고 간 강의 기억을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전문, 『108번째 사내』(문학동네)

 

 

  ▶타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발췌)_ 이구한/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은 시 수장水葬」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도 묘사한다. 저수지에 부서진 문을 띄운다. "아버지가 저수지로 들어간다/ 혀 잘린 개의 눈이 벌어져 있다/ 뭉툭한 달이 개 눈 속에서 빛나고/ 아버지는 바람처럼 물살을 헤친다/ 물 속에 담긴 방/ 이번 생은 모두 젖어 있다" 저수지 바깥으로 가기 위해 문을 띄운다.

  화장이나 수장과 같은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시인은 본 텍스트 마지막 셋째 연에서 "붉은 흙탕물이 휩쓸고 간 그 강의 기억을/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끝맺음한다.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죽음에 대하여 화자가 접근하고자 하는 의식을 볼 수 있다.

  민속학자인 김열규는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책머리에서 "죽음을 잊으면 삶이 덩달아 잊어진다"며 "삶을 다그치듯 죽음을 잊지 말자"고 권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삶 속에 보이지 않게 간직되어 있던 죽음이 어느 날 문득 삶 전체를 뒤집어 보이는 것"3)이라고 강조한다. 

  죽음은 삶의 한복판에 있다. 텍스트에서 타인의 죽음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죽음이 언제든 내 삶 속에 끼어들 수 있다는 성찰을 갖게 한다. 죽음을 기억하므로 타산지석을 삼는 시인의 시작 태도를 엿볼 수 있다. (p. 시 261-262/ 론 263)

 

  3) 김열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궁리, 2003)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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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상반기(17)호 <문학 평론> 에서

 * 이구한(이광소:시)/ 1942년 전북 전주 출생,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 2017년『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당선, 시집『약속의 땅, 서울』『모래시계』『개와 늑대의 시간』, 평론집『착란의 순간과 중첩된 시간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