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인 밤의 무늬
문은성
얼마나 큰 괴로움으로
죽은 자를 기억하는가 두 손을 간절히 쥔 채
땅속에 고개 파묻고 가장 두려운
기도를 올리게 될까
눈물을 씻고
세수를 하고 늦은
저녁을 먹은 후 가장 낮고
괴로운 잠자리에 누워서조차 살고 싶다는
역설적인 욕망을 개발했을까 아침에는
그 욕망에 대한 크고 무한한
좌절과 반복적인 호흡곤란의
공포 섞인 눈물을 개발했을까, 얼마나
얼마나 죽기 싫으면 도리어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충동을 개발하고 자기 온몸을
부드럽고 물컹한
죽음의 피부 속에 푹,
찔러 넣는 긴 칼로 만들었을까 밥을 먹고
약을 삼키고 사랑을 나누며 점점
삶에 가까워질수록 도리어
그 깊은 죽음의 살점
속에 자기 온몸을 푹 푹
찔러 넣으며 그 속으로 깊이,
더 깊이
하강하게 될까 마구
내려앉게 될까 솟아오르고
싶을수록, 날아오르고 싶을수록 점점 더
푹,
푹,
내리누르며······ 꺼져가면서······
그 깊고 무더운 살결에 파묻혀
컥 컥 숨이 막히면서도
각성을 유지하는
역설의 나날
가라앉으며, 가라앉으면서도
가라앉음을 말없이
사랑하면서
지독한
어둠
속에서 살고 싶은 자들의 살결
부딪치는 소리
몽롱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
······ 숨막히는 열기 속
서로를 부르짖는
무더운 아우성의 한가운데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쓰러지면서
-『시사사』 2023-여름호, 전문
▶ 어둠을 통과하는 시(발췌)/ 황사랑/ 문학평론가
삶과 죽음에서 오는 '역설적인 욕망'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몸을 죽음의 피부를 찌르는 칼로 만든다. 이들에게 일상적인 삶은 도리어 자신을 죽음 속에 밀어 넣는 행위다. "밥을 먹고/ 약을 삼키고/ 약을 삼키고 사랑을 나누"는 평범한 일상을 살수록 이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 시에서 주목한 것은 죽음이 피부, 살점, 살결 등 몸의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몸을 갖게 된 죽음은 살아 움직이는 수렁이 되어 삶에 가까워지려는 자들을 죽음의 살결에 파묻어버린다. 죽음과 삶의 살결이 끊임없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푹 푹", 컥 컥") 통해 우리는 죽음을 피부로 감각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문은성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보여며 어떤 희망도 발견되지 않는 죽음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시인에게 있어 죽음을 말하는 것은 곧 삶에 대해 말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죽음이 선사하는 어둠 속에서 인간들은 아우성치며 쓰러져가지만 시인은 그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삶을 포착하려 한다. 밝은 빛에서 태어나는 삶이 아닌, 어둠에서 발견되는 꺼질듯이 위태로운 삶의 의지를.
어둠을 통과하는 방식은 시마다 다르나 우리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거대한 어둠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당하며 죽음과 대면해야 하더라도 시는 어둠을 통과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아주 희미한 빛을 알고 있으므로. (p. 시210-212/ 론 218)
---------------
* 『현대시』 2023-8월(404)호 <현장성/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 작품론> 에서
* 문은성/ 1995년 광주광역시 출생, 2022년 『현대시』로 등단
* 황사랑/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모 마스쿠스/ 강명수 (0) | 2024.04.04 |
---|---|
황치복_개성적인 작시술, 혹은···(발췌)/ 녹슨 천사의 트럼펫 : 김정범 (0) | 2024.04.04 |
노대원_어린-어른, 혹은 성숙한···(발췌)/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 이우성▼ (0) | 2024.04.01 |
강현국_ 떠도는 자의 고독/ 폐차장 : 이하석 (0) | 2024.03.31 |
지나가는 사람/ 유희선 (0) | 2024.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