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노대원_어린-어른, 혹은 성숙한···(발췌)/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 이우성▼

검지 정숙자 2024. 4. 1. 02:07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이우성

 

 

  너는 이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써서도 안 될 것이며 쓴다고 하더라도 그럴듯한 문장은 결코 만들지 못할 것이다 시의 신이 말했다 꿈에서

  나는 울었다 시인이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나는 너를 떠날 것이다

  그 순간 화가 났다 그동안 내 옆에 있었는데 시가 이 모양이었어? 가라,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있으나 마나 시의 신

  잠에서 깼다

  아치피 시 써서 성공하기는 글렀어 혼잣말하며

  부러운 시인들 몇 명을 떠올렸다

  시를 쓰려고 소파에 앉았는데 정말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 그런 시마저 이제 무리인가 어이가 없네 일어나서 청소를 했다 삶을 지우려고

  괜히 막 말했어 그래도 신인데

  나는 성공한 시를 쓴 적이 없다

  눈물이 났다 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성공한 사랑도 한 적이 없다

  현실의 시간은 정확하게 흐르고 그만큼 나는 늙고

  괜찮아 무려 내 첫 시집 제목은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야 너는 잘생겨서 쫓겨난 것야

  웃다가 앉아 시를 쓴다 그렇게 이 시가 탄생했다 월요일 오전 회사도 가지 않고 쓴 시

  흘러내려 한쪽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나는 언어들이 스스로를 지우며 사라지는 소리를 떠올렸다 거기가 나의 나라 

  미남이 사는 나라였어

    -전문(p. 148-149)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어린  어른, 혹은 성숙한 키덜트의 미학(발췌)/ 노대원/ 문학평론가 

  스스로를 미남이라 칭할 수 있는 나르시시스트다. 자기애의 화신이다. (이우성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의 해설 제목은 「지우는, 지워지는 나르키소스」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신화 속에서, 나르키소스는 결코 제 얼굴에 반하지 않았다. 그는 물에 비친 누군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매혹되었을 뿐이다. 그는 그 얼굴의 아름다움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르키소스가 정말 우리가 아는 '나르시시스트'였다면, 어땠을까? 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얼굴이 제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터. 그는 예전처럼 자신을 흠모하는 이들을 무시하며 예언자의 말처럼 오래 잘 살았으리라. 우리는 나르키소스를 자신을 사랑하는 이의 대명사로 쓴다. 오해에서 비롯된 이 명명을 아무런 반대 없이 받아들인다면, 이우성의 시적 화자는 분명 나르시시스트다.

  그는, '우성'이란 시인 자신의 이름을 자주 자신의 시에 호출한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시 속에 불러낸 이가 또 있을까? 이우성 시가 있어 '모든 시인은 나르시시스트다'는 명제는 부분적인 진실만을 담는 말이 되어버린다. 나르시시즘은 근대적 개인의 발견, 혹은 발명에 대해 강조할 때 좋은 레퍼런스다. 물론 나르시시스트 시인은 근대 전환기의 한복판에 던져진, 오래된 역사 속의 화석이 아니다. 실제로 이우성 시인은 현대적 감각과 문화적 트랜드와 분리하기 힘든 개성을 지닌 시인 아니던가. 이우성 시의 나르시시즘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라는 보편적인 역사 철학적 분기점을 상기시키기보다는 그의 시적 개성에 더욱 집중하도록 요구하는 하나의 표지에 가깝다. (p. 시148-149/ 론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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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8월(404)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시/ 작품론> 에서

  * 이우성/ 2009⟪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 노대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