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이하석
폐차장의 여기저기 풀죽은 쇠들
녹슬어 있고, 마른 풀들 그것들 묻을 듯이
덮여 있다. 몇 그루 잎 떨군 나무들
날카로운 가지로 하늘을 할퀴다
녹슨 쇠에 닿아 부르르 떤다.
눈 비 속 녹물들은 흘러내린다, 돌들과
흙들, 풀들을 물들이면서, 한밤에 부딪히는
쇠들을 무마시키며, 녹물들은
숨기지도 않고 구석진 곳에서 드러나며
번져나간다. 차 속에 몸을 숨기며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의 바지에도
붉게 묻으며,
나사들은 차에서 빠져나와 이리저리
떠돌다가 땅 속으로 기어든다, 희고
섬세한 나무 뿌리에도 깃들며, 나무들은
잔뿌리가 감싸는 나사들을 썩히며
부들부들 떤다. 타이어 조각들과
못들, 유리 부스러기와 페인트 껍질들도
더러 폐차장을 빠져나와 떠돌기도 하고
또는 흙 속으로 숨어든다. 풀들의 뿌리 밑
물기에도 젖으며, 흙이 되고
더러는 독이 되어 풀들을 더 넓게
무성하게 확장시킨다.
-전문-
▶ 떠도는 자의 고독(발췌)/ 강현국/ 시인
기웃거림으로; 3자적 시점이어서 자연의 위대함이나 문명의 폐해에 대해 주장하지 않고, 미세함으로; 폐차장에 버려진 사물과 사태에 대한 시시콜콜을 극사실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진 찍듯 바라보고, 사랑함으로; "흙이 되고/ 더러는 독이 되어 풀들을 더 넓게/ 무성하게 확장시"키는 에서와 같이 공평과 상생의 세계에 이르는 시적 전술의 기틀이 된다. 작품 밖에서도 그는 조용하고 섬세하고 따뜻했다. 야단법석하지 않았고, 주변의 길흉사는 빠짐없이 챙겼고, 아무리 화난 일에도 머리띠를 동여매지 않았고, 아무리 못마땅한 일에도 싫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주 씽긋 웃을 뿐 나는 그가 큰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젊은 한 때 옥천집과 옥이집과 돌체를 오가면서 야통에 쫓기도록 비틀비틀 다투어 술주정을 할 때에도 그는 갈짓자 걸음을 걷지 않았다.
1980년 상재한 첫 시집 『투명한 속』에서부터 최근에 출간한 열네 번째 시집 『기억의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적 관심사, 그것은 한평생에 걸쳐 떠돌면서 살핀, 살피면서 떠돌면서 이야기들의 인드라망이다. 이하석의 문학은 요컨대, 자연과 문명, 쇠와 흙, 살림과 죽임, 개인과 이데올로기, 안과 밖, 도시와 시골, 소외와 유대, 썩음과 생성, 앎과 모름 등등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들과, 그 관계가 일으킨 '일'들의 인드라망 탐색이다. 흔히 그렇게들 말하는 것처럼, 광물적 상상력의 리얼리즘 시에서 상생과 소통을 꿈꾸는 생태시로 이행해 온 이하석의 시적 노력의 성과 문명/자연의 대립적 인식은 그의 시를 이루는 하나의 거푸집으로서, 인공적인 문명세계에서 자연에의 동경의 형식이 된다(서준섭)-는 1990년 『우리 낯선 사람들』에 수여된 김수영문학상이 대변해주는바 한국문학사의 주요 자산이 된 것은 잘 알려진 것과 같다. (p. 시134-135/ 론 135)
---------------
* 『현대시』 2023-8월(404)호 <커버스토리_이하석: 시/ 작품론_강현국> 에서
* 이하석/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투명한 속』『김씨의 옆얼굴』『우리 낯선 사람들』『측백나무 울타리』『다시 고령을 그리다』『기억의 미래』등
* 강현국/ 197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노을이 쓰는 문장』외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사랑_어둠을 통과하는 시(발췌)/ 반복적인 밤의 무늬 : 문은성 (0) | 2024.04.02 |
---|---|
노대원_어린-어른, 혹은 성숙한···(발췌)/ 시의 신이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시 : 이우성▼ (0) | 2024.04.01 |
지나가는 사람/ 유희선 (0) | 2024.03.30 |
킨츠기 교실/ 서윤후 (0) | 2024.03.30 |
가라앉히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노래/ 김산 (0) | 2024.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