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희고 노랗게 남은 너를 유리구에 두었다/ 최정진

검지 정숙자 2024. 3. 26. 02:09

 

    희고 노랗게 남은 너를 유리구에 두었다

 

     최정진

 

 

  심장 간 수치가 매우 높고 당뇨도 있는 것 같아서

  수의사가 더 살기 어렵다고 했다

  거의 매일 보고 없는 꼬리를 흔들며

  집에서는 어디든 따라다녔는데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료 맛있게 먹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만 보였다

  사람 손타는 것을 꺼리는 고양이였다

  가기 전 몇 달 동안

  자주 가까이에서 얼굴을 한참 쳐다보고

  처음 가족이 된 날처럼 왜 발등을 베고 잠들었는지

  아프다가 통증이 덜하면 내 생각이 난 것일까

  통증이 심할 때였던 것일까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 한 배웅 같은 것일까

  고양이를 보내고 집 청소를 했다

  뭉쳐 빗겨 냈던 희고 노란 고양이 털이 나왔다

  그것을 투명한 유리구에 두었다

  죽어서도 귀엽게 남은 고양이를

  볕 드는 창가에 두었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더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그것은 고양이는 죽었고 곁에 없다는 것

    -전문(p. 49)

 

  ♣ 시작노트> 전문: 고양이를 보내고 미처 다하지 못한 인사처럼 이따금 후회, 미련, 안타까움, 반성이 섞인 말을 하게 된다. 그것을 여러 번에 걸쳐 말하게 된다. 사료 섭취량, 음수량, 변 상태, 눈의 색이 어떤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런데 정작 매일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2년 전에 비해 제 몸무게의 3분의 1이 줄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고양이를 보내고 고양이와 보낸 시절을 마저 보내고 있다.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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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8월(404)호 <신작특집> 에서

  * 최정진/ 200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