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전문
시의 물결, 참문학
김금용/ 본지 주간
최근 대학 입시생 중 100명 중 8, 9명만이 인문계 지원을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대학마다 인문의 근본이 되는 '문사철' 학과가 사라진다는 우려에 한 술 덧붙여 챗GPT의 시집 발간으로 적잖은 허탈감과 위기감에 당황하게 된다. 인문이 쇠락하고 시가 위기에 처하고 문명은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생산한 시란 것은 사실상 기존 발표된 작품의 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패턴을 추출하고, 시어를 수집, 모방한 것이어서 시인의 감각을 뚫고 나온 창의적 사고와 개성 넘치는 섬세함에는 다가갈 수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의 앞자리에 서온 문학은, 문학의 정점에 선 시는, 언제고 인간 사고의 정수를 뿜어냄으로써 시대정신을 선도해왔다.
시인은 여전히 우리 삶과 존재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자이며, 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해체와 허무에 도전하는 혁명가이다. 또한 현실에 대한 반향과 자유를 향한 탈출 의지를 각양각색의 목소리로 터뜨리는 선발자이기도 하다.
2024년 청룡해 봄에 『시결』을 창간한다. '시결'은 문자 그대로 '시의 물결 또는 사조' '시의 무늬 또는 특성'을 의미하며, 나아가 '시의 결기 또는 각오'라는 의미까지를 함축한다.
『시결』은 '참문학'을 지켜내는 문예지로서 시적, 문학적 조류의 선봉에 서서, 시인은 물론 현대인들의 혼돈된 삶, 방향 잃은 문명의 안개를 헤쳐 나가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결'이란 '결이 곱다' '성품' '무늬의 특징' '구도의 결'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의 독자성, 그 시적 특성과 예술성,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선시에 나타나는 사유의 극치를 찾아내고 발굴하여, 그것을 기리고자 한다. 시결은 또한 영문 명칭으로 시적인 모든 것을 지칭하는 형용사 포에티쿠스(Poeticus)에 걸맞는다. 실제 '시인의 수선화'라는 이름을 가진 포에티쿠스 수선화(Narcissus Poeticus)는 꿩눈 수선화로도 불리며 순백색, 붉은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색뿐만 아니라, 히아신스와 쟈스민이 섞인 듯한 향기가 좋아 예부터 시인들이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 『시결』도 포에티쿠스 수선화의 색깔과 향기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현대적 상황 속, 모든 불협화음을 다 끌어난고 다양한 시 경향과 목소리를 '시의 중심' '참문학'으로 수용하고 펼쳐내고자 한다.
미래 지향의 첨예한 시편들의 장을 마련하여 문명의 파수꾼으로 '시의 결기'를 다져나가고자 한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부작용으로 일어나는 환경오염, 이상 기후변화 등, 지구적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시의 물결, 그 중심'을 선도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결』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도 주목한다.
『노자』 8장에서는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중략··· // 夫唯不爭, 故無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중략··· //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라고 했다.
시인들의 깨어난 촉각과 예감은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할 것이기에 시는 밤새 내리는 단비처럼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물결로 넘치고 넘칠 것이다. 물의 흐름은 시간, 계절을 관통하는 뭇 생명의 시작이자 우주의 중심으로 다툼 없이 융화와 통합을 실현하고 있다. 이는 원효의 화쟁和諍과도 통해서 원효가 주창한 대립 사상의 통합적 승화를 우리 시에서도 추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탈장르, 통섭의 시대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의 소통, 융합을 잡지 지면을 통해 구현해 보고자 한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필진을 찾아 철학은 물론 평론과 산문, 시조와 동시를 발표하는 장을 마련했다. 앞으로 해외문학인들과의 교류도 시도해 볼 것이다. 동일한 시각에서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그들의 현재를 소개하는 장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시의 다양한 흐름을 수용하며 물과 물의 경계를 지우고, 시를 통해 자유를 구가하는 문학지를 만들어 갈 것이다. '참문학'을 위해서라면 세대로나 경향으로나 다 기회를 주는 잡지가 될 것이다. 바람의 기운을 타고 물의 방향을 거슬리지 않는 조건적 자유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멀리 헤엄쳐 나가는 문인들의 멋들어진 바람결(최치원의 풍류도)이 되기를, 도도한 물결이 되어 넘쳐나기를, 그리하여 시와 문학과 예술의 향연, 화엄장이 펼쳐지기를 꿈꿔본다. 해 뜨는 동쪽을 향해 날아오르는 청룡처럼 희망과 도전의 깃발을 걸고, 하나하나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p.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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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결』 2024-봄(창간)호 <여는 글> 에서
* 김금용/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물의 시간이 온다』『각을 끌어안다』『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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