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황홀한 작별 외 1편/ 김정인

검지 정숙자 2024. 3. 22. 02:35

 

    황홀한 작별 외 1편

 

     김정인

 

 

  상원사 가는 길

  조릿대 군락에 대꽃이 피었다

  꽃 쓰다듬고 냄새를 끌어보고 싶었는데

  스치는 길 아쉬워 몇 번을 뒤돌아보았는데

  이듬해 앙상한 싸릿대 되어

  꽃도 댓잎도 다 죽었다

 

  꽃이 활짝 피면

  바짝 붙어 따라와 떠나가는 시간

  무엇이 죽을 만큼 힘들어

  피를 토하듯 마지막 꽃을 피웠나

  조릿대의 시간은

  존재하던 것들이 건너가는 시간

  꽃의 시간은

  황홀한 작별을 준비하는 시간

 

  처절함도 노을로 지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읽어도 읽어도 여전히 깨우치기 힘든

  경전 한 구절

  몸 벗은 조릿대가 귓속말한다

  "모든 존재는 나와 다르지 않다"

     -전문(p. 80)

 

 

    ------------------

    낙타커피

 

 

  <낙타커피>가 있는 문학관에서

  낙타커피를 마신다

  모래바람 수없이 삼켜 뱃속까지 하얀 낙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그곳에서

  명사산을 오르며 목축인 한 모금의 물처럼

  300도 모래에서 들끓은 커피를 마신다

 

  낙타가 파충류의 체온과 쓸개도 없이 살아가듯

  시인도 새의 피로 날고 눈 뜨지 않아도 보이는

  예지력을 찾아 그렇게 사막을 헤매고 다녔을 것

  낙타는 낙타의 사체만 보고 죽는다는데

  시를 놓지 못하는 시인은

  시의 혼령을 찾아 누울 자리를 찾아 헤맸을 것

  여기는 대도시 범어천이 흐르는 곳

  오늘의 낙타커피가 내가 찾아간 사막을 불러 왔네

 

  명사산 가는 길에 만났던

  나의 낙타는 잘 있는지

  지금도 하얗게 엉겨 붙은 긴 속눈썹 무겁게 뜨고

  누가 등에 올라탔는지는 아랑곳없이

  걸음 맞추어 요령 흔들며 무심히 지나가는지

  저절로 닫히는 콧구멍으로 썩은 냄새 막고

  묵묵히 등 내어 준 쌍봉낙타

  타들어 간 발바닥은 사막을 안고 있는지

 

  코끼리 발바닥으로 바뀌어 발톱으로

  모래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한 줄의 시도 비워 내어야 얻을 수 있듯

  숙명으로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를 만나러

  바람 부는 날 아니어도 낙타커피를 마신다

  푸른 나무 보이는 월아천이 있다

  백로와 청둥오리가 사는 범어천이 있다

     -전문(p. 36-37)

   -------------------------

  * 시집 『느닷없이 애플파이』에서/ 2024. 2. 28. <서정시학> 펴냄 

  * 김정인/ 서울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오래도록 내 안에서』『누군가 잡았지 옷깃』교육서『엄마는 7학년』『쑥쑥 논술머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