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도깨비 바람, 동백 외 1편/ 김광기

검지 정숙자 2024. 3. 24. 02:01

 

    도깨비 바람, 동백 외 1편

 

     김광기

 

 

  한겨울에 피는 붉은 동백꽃 속에

  제주 사람들의 한과 삶의 의지가 있다.

  4·3의 꽃이기도 한 동백꽃은

  제주 사람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목을 뚝뚝 꺾어내며 낙화하는 꽃들,

  꽃들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모가지가 끊어져 널려있는 꽃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꽃잎 하나하나 날리는

  애기동백을 심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동백보다

  이상적인 사랑의 애기동백으로 심상을 다스리는

  제주 사람들, 아직 동백꽃을 닮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오갔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섬,

  애기동백이 지고 나면 다시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들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데아들.

  꽃 진 자리에 맺히는 동백 열매처럼

  푸르고 단단한 것이 한여름까지 뜨겁게 익어가는

  동백나무를 휘돌아 감는 바람,

  시시때때로 불었다 그쳤다 하는 도깨비 같은 바람 속,

  그 태생이 성산이고 그 상징이 동백이었다.

  동박새 같은 뭍의 남자, 이곳에 와서야

  제주 여자로만 알았던 아내가

  바람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문(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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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와 어부, 바람 바다에 살다

 

 

  1. 해녀 홍희순 님의 바람

 

  생선 살을 바르듯 무를 썰어 말리며

  바람의 방향을 짚는다.

  하, 오늘도 북서풍 된바람에 물살이 거세겠어.

  서둘러 물길을 타듯 하늘로 치솟으려는 듯

  물살을 휘어잡으려는 분주한 몸짓,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기류 떄문에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달라진 온도 때문에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다.

  평생을 바닷물에 맞춰온 체온 때문에

  화닥화닥하기만 하다.

  된바람이 몸을 식혀주고 있지만

  그녀는 늘 바다가 걱정이다.

  할망은 오늘도 태왁을 구름 위에 띄워놓고

  바람의 무사귀환을 기도한다.

 

 

  2. 어부 박영숙 님의 바다

 

  출렁이는 바닥을 흔들흔들 거닐고 있다.

  온 생의 물결을 타며 바다를 걸어온

  발자국들이 뜨락에 가지런하다.

  일출봉을 바라보면서 자란 소년은

  그 등성이에서 바다로 나서며 평생을 일궜다.

  4·3의 난리를 겪던 그 시절에는 대마도로 부산으로

  바닷길을 전전하다가 돌아오기도 했지만

  바다를 떠나 다른 삶을 꿈꾸지 못했다.

  큰딸은 아방의 곁에서 시인을 꿈꾸었지만

  설마하니 시인이 될 줄은, 딸들이 석박사가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바람을 타며 고기를 잡았고

  어한기 바닷가 농토를 일구는 데 힘을 다할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등대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망망대해에 불빛을 쏘고 있는 세월 속에서

  그의 발자국은 무심히 찍히고 있었다.

  센 물살에 하염없는 세월이 지워지고 있었지만

  그 불빛은 여전히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노쇠한 몸으로 바닷가를 거닐며 오늘도

  기도의 눈빛으로 먼바다를 보고 있다.

      -전문(p.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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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풍경』에서/ 2024. 3. 12. <문학과 사람> 펴냄 

  김광기/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1995년 시집『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시집『호두껍질』『데칼코마니』『시계이빨』등시론집『존재와 시간의 메타포』『글쓰기 전략과 논술』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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