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느닷없이 애플파이/ 김정인

검지 정숙자 2024. 3. 22. 02:10

 

    느닷없이 애플파이

 

     김정인

 

 

  그 섬에 온 김에

  소문난 애플파이를 맛보기로 했다

  사과를 닮은 파이 한 개를 넷으로 나눴다

  사과는 분수를 좋아해 다행이라며

  억지로 생각도 욱여넣었다

 

  리조트 앞 바닷가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푸른 파도는 빨간 파이의 맛을 알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영감의 원천은 뭐든지 갖다 붙일 수 있는 것

  트럼프 병사들이 카드 꾸러미가 되는 명장면은

  혼을 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이야기

 

  나는 앨리스처럼 토끼를 쫓아가

  기상천외한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느닷없이 애플파이'라는 팻말을 

  포크로 콕 찍어준 그 낱말은 따라가고 싶었다

  푸른 바다 위 갈매기는 끼룩끼룩 날고

  혀끝을 스치는 맛, 빨간 애플파이

 

  돌아오는 길

  포크를 봉돌 삼아 찌를 맞추고

  생각의 부력을 띄운다

  끌어 올려진 문장은

  세상 다시 태어나게 할 말 한마디

  막힌 숨을 뚫는다

  내 안에서 오래 숨 쉬고 있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는 제주도 리조트의 빵집에서 애플파이를 사면서 겪은 일이 소재가 되었다. 사과를 재료로 한 그 애플파이는 외형도 빨간 사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파이 앞에는 '느닷없이 애플파이'라는 문구가 포크에 꽂혀 있다. 그 낱말이 너무 신기해서 동화의 나라에 들어간 것처럼 여러 가지 상상이 솟아난다. 사과같이 생긴 파이를 사과처럼 넷으로 나누어 사이좋게 먹고 푸른 파도를 보고 갈매기 나는 모습도 보았다. 거기서 얻은 시각과 청각과 미각의 감미로운 조화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 주었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숙소로 돌아올 때 포크가 상상의 낚싯봉이 되어 "생각의 부력을" 띄우고 "막힌 숨을 뚫고" 시인의 마음에 여러 가지 시상이 떠오르게 했다. 우연히 접한 애플파이 하나와 '느닷없이 애플파이'[라는 푯말 하나가 시의 우주를 빚어낸 것이다. 그렇게 시의 언어와 만나게 된 것은 시인이 대상을 자신과 유관한 유정한 대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인이 대상에 마음을 열었기에 대상도 시인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낸 것이다. 애플파이 하나, 포크 하나, 팻말 하나까지 사소히 넘기지 않고 사랑의 눈길로 볼 때 그 대상은 시인에게 다가와 꽃이 된다. (p. 시 14-15/ 론 113~114) <이숭원/ 문학평론가 · 서울예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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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느닷없이 애플파이』에서/ 2024. 2. 28. <서정시학> 펴냄 

 김정인/ 서울 출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오래도록 내 안에서』『누군가 잡았지 옷깃』, 교육서『엄마는 7학년』『쑥쑥 논술머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