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몇 방울의 찬란/ 문현미

검지 정숙자 2024. 3. 21. 03:00

 

    몇 방울의 찬란

 

     문현미

 

 

  내 속의 마른 뼈들이 서걱거린다

  바람 몰아칠 때나 세찬 비 가슴을 두드릴 때나

  햇볕의 민낯이 눈부신 날이든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실금이 간 뼛조각들을 모아서

  조심조심 날카로운 속도로 맞추어 본다

 

  초록 그늘 울창한 나무로 서 있다가

  침묵으로 말 건네는 바위로 덩그러니 앉아 있다가

  흔들리며 떠 있는 조각배로 흐르다가

  기억들의 창가에 아른거리는 빛의 잔영마저

  간간이 마음 우물로 고여 드는 때,

  두레박 줄 깊이 내려 물 한 자락 길어 올린다

 

  몇 모금 생수의 갈증으로 생기를 찾고

  새로운 피를 받은 뼈들이 하늘을 향해

  날개 펼치는 소리가 푸른 속도로 웅웅거리고

  오랜 묵상과 눈물의 기도 너머

  몸의 사원에서 빠져나온 언어들은 푸르게 돋아난다

 

  최초의 노래인 듯, 낯선 고백 몇 방울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편은 "내 속의 미른 뼈들"이라는 저 구약성서 에스겔의 이미지를 불러오면서 시작된다. 시인은 해가 나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실금이 간 뼛조각들"을 모아 맞추어본다. 그래서 울창한 나무나 침묵의 바위나 흔들리는 조각배로 있다가도, 기억의 잔영이 고인 "마음 우물"로 두레박줄을 내려 물 한 자락 길어 올린다. 그때 생기를 찾아 새로운 피를 받은 뼈들이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야말로 묵상과 기도 너머 "몸의 사원에서 빠져나온 언어들"이 푸르게 돋아난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맞추어지고 살아난 뼈들이 "최초의 노래"처럼 "낯선 고백 몇 방울"의 찬란함을 건네고 있다. 그 "최초의 노래"이자 "고백 몇 방울"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질서가 내장된 서정적 기품을 함축하고 있지 않는가. (···略···)

  결국 시인이 구축해가는 질서는 대상을 향한 간절함이 시간의 풍화에 따라 천천히 지워져 가다가 문득 충일함으로 번져가는 순간을 품고 있다. 시인은 그러한 상황을 실존적으로 승인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슬픔을 넉넉하게 수용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없는 그리움을 저류底流에 숨기면서 오랜 시간 함께 흘러온 시간의 현상학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아니 그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가장 근원적인 질서를 수용하고 실존적으로 품는 시학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간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통해 가장 심층적인 사랑의 시학을 노래해 가는 것이다. 근원적 질서가 반짝이는 찬란한 순간이 그 안에서 가득 출렁이고 있다. (p. 시 45/ 론 110~112) <유성호/ 문학평론가 ·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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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몇 방울의 찬란』에서/ 2024. 3. 20. <황금알> 펴냄 

  * 문현미/ 부산 출생, 199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기다림은 얼굴이 없다』『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아버지의 만물상 트럭』『그날이 멀지 않다』『깊고 푸른 섬』『바람의 뼈로 현을 켜다』『사랑이 돌아오는 시간』 등, 번역서『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학선집』(1권~4권), 안톤 슈낙『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명시칼럼『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