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서울역 7017, 휘파람을 부세요/ 윤진화

검지 정숙자 2024. 3. 3. 02:19

 

    서울역 7017, 휘파람을 부세요

 

     윤진화

 

 

  의정부 이모가 죽었다. 무당은 신이 자기를 버릴까 봐 또 다른 신을 찾아다녔다. 제일 오래된 신의 끈을 세게 묶고 산책을 했다. 피아노에 있어야 할 건반을 이가 빠진 노인이 들고 있었다.

 

  르네상스식 서울역은 옛것이었다. 바로 옆에 낡은 신을 모아서 만든 슈즈 트리(shoes tree)가 있었다. 옛 서울역만큼이나 높게 쌓아 탑을 이뤘다. 사람들이 냄새나고 더러운 신들을 치워달라며 민원을 넣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이 파도쳤다.

 

  나는 선녀보살 이모처럼 휘파람을 불었다. 깊은 바다에서 자맥질을 끝내고서야 휘이익    숨비소리 내는 해녀처럼. 부채는 없었지만 바람은 적당히 불었다. 정수리로 전기가 찌리릿 올랐고, 온몸이 뜨거워서 신을 벗었다. 시원하고 친절한 신발가게 찾아 일부러 산책을 했다. 맨발이었다.

    -전문(p.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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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2022-봄(81)호 <신작시> 에서

  * 윤진화/ 2005년 ⟪세계일보⟫로 등단, 시집『우리의 야생 소녀』『모두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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