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임후
배를 타고 있었는데 밤이었어요 친구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지금 선실 창밖 풍경이 너무 예쁘다고 지금 당장 봐야 한다고 소리쳤어요 친구들이랑 허겁지 창문 앞으로 달려갔는데 어두운 밤에 파도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진짜 너무너무 예뻐서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환하게 빛났어요 그리고 파도가 엄청 세게 쳤는데 풍경은 너무 예쁘고 크게 요동치는 파도에 배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게 너무 재밌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요 행복해하고 행복해하다가 어느새 파도가 잦아드는 것 같았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모두 사라지고 깜깜한 암흑 속에 저 홀로 떠가고 있었어요 해몽을 해 주실 수 있나요 해몽을 받고 싶어요 이미 백 년이 지난 꿈이라도 괜찮다면요
-전문- 59
시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한 문장: 아이비리그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작년부터 회사에 복귀했지만, 월급쟁이로서 현업에서 일을 하며, 세상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따로 있고, 그런 방식으로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손쉽게 큰돈을 만지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헤어진 연인과 같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다른 커플의 헤어진 연인과 연애 감정을 쌓는, 유사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와 얼굴을 알린 이십대 후반의 한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에 제품 사진 한 장을 올려 주는 것으로도 삼천만 원을 받는다. 개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제품을 잘 팔기로 소문난, 전직 쇼호스트는 한 시간 제품을 팔아 주는 것만으로도 오천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시인은 며칠 혹은 몇 달의 노고가 담긴 시 한 편에 이만 원, 삼만 원을 받는 일이 허다하고, 이미 시단에서 어느 정도 촉망받는 시인이라고 하더라도 이삼만 원은커녕, 아예 대가 없는 원고 청탁조차 받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시 p. 59 / 론 68-69)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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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겨울(31)호 <issue 비등단/ 신작/ 시론> 에서
* 임후/ 2022년 시집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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