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이윤정
순종도 오래 견디면 브레이크가 생기는 것일까
앞만 보며 달리던 계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화창한 날을 걸었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던 봄날이 있었다
차오르는 숨을 누르며 더 빠르게 높은 곳을 향해 달렸었다
등에는 달려온 만큼 휘어진 속도가 모질게 박혀 있다
갈랫길에서도 주저하지 않던 추진력은
순종의 자세로 단단히 묶여지고
어느 날부터 녹이 슬기 시작했다
녹은 고요하게 들어왔다
제동에 하나 둘 균열이 일고 안장이 사라지고
바퀴마저 달아나 속도가 멈춘 일생이었다
누구의 손이건 저마다 쥐고 있는 브레이크 있어
과속을 잡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움켜쥔 두 손이 영영 그를 멈추게 했는지도 모른다
속도가 사라진 곳에는 녹슨 관절의 삐걱거림만 붙어 있다
잠겨 있는 단단한 틈에 몇 개의 별들을 넣어 보기도 하고
길 잃은 취객의 발길질도 넣어 보지만
세상에는 잃어버린 것들로 열 수 없는 게 많다
딸깍, 누군가 낡은 손잡이를 잡는다
등이 다르게 구부러진 사람이 한참을 붙들고 있다
먼지에 오래 눌린 안장 위로 닮은 엉덩이가 앉는다
출발선 앞에서 깜박거리는 눈빛
삐걱거리는 페달이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전문(p. 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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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겨울(31)호 <poem> 에서
* 이윤정/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세상의 모든 달은 고래가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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