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먼 길사랑 꽃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
노혜봉
날아다니는 꽃처럼 첫눈 날아와 앉은 글씨들
『묵향으로 노래하는 시 서예전』 눈 맞춤 하면서
님을 기리는 발자국 자국 따라 향을 쫓았습니다
신발 창 다 닳도록 저 아래 골짜기 물을 길어와
당신의 연꽃 연적에 가득 가득 물을 채웁니다
제 손톱 먹 향에 온통 물들 때까지, 당신께
정성스레 진득한 먹물을 갈아 바치겠어요
눈 녹아 흙탕물 젖은 그 먼 먼길 걸어오시면
제 입성 모두 벗어서 발밑에 깔아 드리지요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뜻 곱씹는데
시집 제목은 '군말'이라 애초엔 없었는데
출판사 성화에 점 ● 하나 찍어주셨다지요*
내생에는 첫눈 오는 날 이 허공을 보고자
연꽃으로 날아와 님의 손 안에 잡힌다면야
여기 마땅히 머무는 법, 법이 없이 기뻐
날아다니는 꽃 첫눈 내리는 마음을 입었으니.
-전문(p. 83)
*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애초엔 제목을 달지 않았는데 출판사 측에서 어렵다고 하니 만해는 점 ● 하나를 찍어주셨다 한다. 그래도 어렵다 하니, '침묵'이라 써 주신 것을 출판사에서 『님의 침묵』이라 정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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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노혜봉/ 서울 출생, 1990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산화가』『쇠귀, 저 깊은 골짝』『봄빛절벽』『좋을 호』『見者, 첫눈에 반해서』등, 시선집『소리가 잠든 꽃물』『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 만해 한용운 위인 동화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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