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도시
장유정
몰락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흔적이 있다
모든 모래의 밑에는 아직도 거대한 도시가 있을 것 같다
바람에 이동하는 거대한 지붕
창문을 달고 있는 팔작지붕의 경사면 같은 모래산
물기 빠진 저녁이 밀려와 쌓여 있는 사막엔
발을 잡는 징후가 깊다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불빛이 발굴되는, 모래의 지붕 모래의 빛 모래의 담
거기 거짓말처럼 허물어지고 있는 도시가 있다
초승달처럼 곱게 휜 오아시스, 아이를 낳고 모래 밥을 먹거나 모래시계같이 깊은 내지를 거친 도시
비밀 통로로 바람의 목수가 건사했을 유곽
한 세계의 멸망도 진화의 일종이다
문명의 극에 달한 도시는 공들여 쌓은 모래 탑처럼
몰락의 일몰로 사라졌다
발굴 팀은 한 도시를 출토했다
성곽처럼 굵은 골격을 가졌었던 바람의 길이었다
물이 버린 문명은 모래 산이 된다는 듯
발견된 도시에서는
돌촉의 파편 같은 뼈마디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도시의 건조함이 모래를 불러왔을 것이다
밤이면 모래 속에서 걸어 나온 우물들이 축축한 거죽의 눈빛으로 껌벅일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장유정의 시는 문명 이후의 세계로까지 나아간다. 시집 전반에 자연물을 호명한 작품이 다수 등장하지만 이 시집은 자연 서정에 대한 관습적 관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런 것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듯 장유정 시의 자연은 언제나 다른 세계와 연결되며 시적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혼종성은 몰락한, 문명 이후의 세계까지 수용하며 지평을 넓힌다. 문명 이후의 세계는 모든 것이 끝난 시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 한다.
장유정 시인에게 혼종성은 애초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론일지도 모른다.몰락한 세계를 따라가면 그곳에 "도시의 흔적이" 있고, "물이 버린 문명"인 도시는 "모래 산"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모래로부터 시작되어 모래가 되는, 처음과 끝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다르지 않은 것이었으리라. 여러 지점을 횡단하는 시인의 상상력과 세계관은 애초의 세계라는 근원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시인이 만든 광범위한 시적 국면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되어 삶과 세계가 무엇인지 탐문한다. 시인은 몰락과 모래의 세계가 끝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시인은 "모래 속에서 걸어 나온 우물들이 축축한 거죽의 눈빛으로 껌벅"이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것임을 잘 알고 있다. (p. 시 86-87/ 론 135-136) <조동범/ 시인>
---------------------
* 시집 『저녁이라 불러서는 안 돼요』에서/ 2024. 1. 12. <시작> 펴냄
* 장유정/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그늘이 말을 걸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먼 길사랑 꽃_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 노혜봉 (0) | 2024.02.04 |
---|---|
발레리나 외 1편/ 장유정 (0) | 2024.02.02 |
다누리호, 달 향한 긴 여정 출발 외 1편/ 박정자 (0) | 2024.01.31 |
행복 일기 · 253 외 1편/ 박정자 (0) | 2024.01.31 |
또 다른 생각 4 외 1편/ 이종천 (0) | 2024.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