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사랑할 마지막 시간▼
오주리
내 생의 마지막 장章
세상과 작별 인사를 위해 남겨진 시간
비 오는 4월의 벚꽃길 사랑한다 말하면, 나도 봄빛 수채화의 풍경이 되면, 신은 죽음의 병 오던 걸음 멈추라 할까
생을 사랑하지 않은 죄로 죽음의 병 찾아와
당신의 섭리 깨쳤으니, 신이시여, 이젠 눈물 닦아주소서
나의 짧은 생, 태어나 내내 우울이라는 생명체의 연인이던 나의 흰손 끝에서 태어난 건 눈물의 시뿐
메마른 벚나무 가지, 꽃눈은 봄밤의 어둠에도 피어났건만, 나의 여체만은 스스로 목 조르듯 이 세상 아니라 죽음으로 피어나는 꽃
비바람에 벚꽃잎이 나비의 영혼처럼 유계幽界로 흩날린다
존재하자마자 사라지는 꽃잎들, 시들고 마를 새 없이 꽃의 운명이란 떨어지는 것이니, 봄비에 벚꽃의 순간은 영원도 하였다
목숨이란 이처럼 가벼운 것을
목숨이란 가벼워 아름다운 것을
신이시여, 왜 하필 지옥보다 더 한 죽음의 길 주시나이까
나의 가슴 긋던 칼, 빼앗으시던 당신이여
생을 사랑하지 않은 죄, 죽음의 병은 신의 섭리 깨우쳐 주지만
생의 텅 빔이여, 나는 눈물로써 존재할 뿐
생의 텅 빔이여, 병 낫거든 무얼 위해 더 살아야 할까
생을 사랑할··· 사랑할 마지막 이 시간에
-전문(p. 52-53)
♣ 시작노트
올봄, 마음의 준비 없이 큰 병을 선고받았다. 마리아상 앞에 엎드려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신부님께서 하느님은 그러한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신부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음을 믿으며 수술과 치료에 임했다. 지금 나는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을 잊었다.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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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7월(403)호 <신작특집> 에서
* 오주리/ 201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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