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샷
오정국
한 발짝도 생략하지 못했다
누가 내 눈을 가리고 데려온 건 아닌데, 문득 지금 여기다 멀리도 아니고 가깝지도 않게 딱 이만큼의 간격, 정면은 언제나 눈에 아프지만 숨을 데가 없다
누구든 제 발로 여기까지 왔다
어떤 얼굴은 꽃송이 같고, 그 곁은 종잇조각 같고, 뒤쪽은 페인트칠 벗겨진 문짝 같은데, 또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 건가
카메라 뒤편의 길이 우리가 깊어나갈 생이라면, 등 뒤의 배경은 살아온 내력이다 벚꽃 터널은 눈부셨고, 유적지 돌탑은 아름다웠다 오늘은 기념식 현수막이 펄럭거린다 이 순간만큼은 웃는 듯이 울고, 울면서 웃어야 한다
여태껏 발걸음 바깥을 살아보지 못했다
문득 고개를 쳐들면 날이 저물고, 긴장된 침묵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사진 찍고 남겨진 얼굴, 공중에 희뿌옇게 떠 있는 저것은
-전문(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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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7월(403)호 <신작특집> 에서
* 오정국/ 198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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