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귀화/ 배귀선

검지 정숙자 2024. 2. 1. 01:50

 

    귀화

 

    배귀선

 

 

  기억에 묶인 저녁이 어슬렁거린다

  반원이 만든 공간과 그 너머

 

  마당을 끌고 사는 목줄은

  얼마큼의 시간이 흘러야 벗을 수 있을까

 

  앞발을 허공에 그어대며 당기는 지척

  여기와 저기, 한 발짝도 목줄 없이는 내디딜 수 없는

 

  짐승의 세월

  기억을 길들이는 듯 허공을 짖는다

 

  몸속 어딘가 웅크린

  소식 없는 딸아이 같은

 

  무거움이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늦은 밤이면 나는

 

  습관처럼 가장 빠르게

  귀화를 서두른다

 

  오늘은 또 허공을 향해

  얼마나 짖어야 하나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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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7월(403)호 <신작특집> 에서

  * 배귀선/ 2011년 ⟪전라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 2013년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