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가든 외 1편
백연숙
아파트 화단을 지날 때였다
스무 살 남짓 되었을까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이리저리 갖다 대며
맥문동을 찍느라 여념 없다
아니, 벌써 그 나이에
꽃이 예쁘다는 걸 알다니!
저 나이 때 나는
기차 사고로 입원 중이었고 오랫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지
죽은 피를 한 사발씩 뽑고 나서 창문을 내다봤을 때
병원 화단에 피어 있던 꽃
그때는 저 꽃이 맥문동인 줄 몰랐다
기차가 달릴 때마다 꽃은 궤도를 이탈한 별똥별처럼 빛났다
타는 듯한 폭염이든 폭우든
아무렴, 잘 자라는 맥문동이 맥문동인 걸 이제 잘 알지만
정작 저 보랏빛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는데
꽃은 멍에서 오고
멍은 뿌리로부터 온다
꽃은 잘 보이지만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멍의 뿌리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꽃이 예쁘다는 걸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다
-전문(p.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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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물들까 봐 근처도 가지 않았다며
쥐똥나무 창공이라며 친구라며
졸지도 않았다며
꽃은 피었지만 나비는 날지 않았다며
사각지대는 아니었다며
새가 노래로 울었다며
58년 개띠 열댓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며
게이는 아니지만 스타킹이 나왔다며
뒤로 갈 수도 없었다며 대포통장이었다며
아이와 노모가 타고 있었다며
하필이면 블랙박스가 꺼져 있었다며
애인이라며
월요일은 일산 수요일은 목동
토요일은 우리 동네 약수터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자
운 좋게 발을 뺐다며 물까지 타진 않았다며
고향 가는 길이었다며
-전문(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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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에서/ 2024. 1. 2. <파란> 펴냄
* 백연숙/ 충남 보령 출생, 1996년 『문학사상』으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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