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13
김신용
가시可視가, 가시 같은 날이 있다. 참 낯선 풍경을 보는 날이다. 낯선 풍경이라지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날이다. 서울역 광장 한편에 작은 제단이 차려지고 향이 피어오른다. 역 지하도에서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노숙의 넋들을 위한 위령제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시 같다. 가시可視가, 가시 같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 , 살아서 이미 죽은 사람들 , 얼굴이 없는 얼굴들 , 눈앞에 마치 얼룩처럼 떠오른다. 눈에 박힌 비문飛蚊처럼 떠오른다.
저것도 빈곤 포르노 같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던 사람들 , 흑백으로 남겨진 초라한 몇몇 영정 사진도 보인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위태로운 벼랑에서의 삶들 , 그 비박飛拍의 생들 ,
오늘, 흑백의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제 죽어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보내고 있다. 지하도에서 역 광장 구석진 곳에서 빈손을 내밀 때마다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 그러나 한 마리의 새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욱 악착같이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 이제는 죽어서 다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날려 보내고 있다.
그래, 가시可視가 가시 같다. 아직도 날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는 눈이, 가시 같다. 하루하루가 검은 포르노그래피 같았던
그 벌거벗은 시간들이, 가시 같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는 서울역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노숙의 넋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존재하는 이런 이미지를 푼크툼(punctum)이라고 명명했다. 라틴어로 푼크툼은 뾰족한 도구에 의한 상처, 찌름, 상흔 등을 의미하는데, 이처럼 풍경이 그것을 보는 사람을 찌를 때 '가시可視=가시pickle'라는 등식은 성립된다. 이 등식은 언어적 동일성에서 시작되지만 '언어'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 등식에 기대어 시인은 그들, 즉 사회적으로 배제된 채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고 "얼굴이 없는 얼굴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그들이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이며 자신이 눈을 감을 때마다 "눈앞에 마치 얼룩처럼 떠오른다"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시인에게 이 삶은 "위태로운 벼랑에서의 삶들 , 그 비박飛拍의 생들 ,"이다. 하지만 김신용의 시에서 이 위태로운 삶은 무능력한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 김신용에게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눈을 감음으로써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보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벌거벗은 시간들" 너머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p. 시 75-76/ 론 204) <고봉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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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에서/ 2023. 12. 27. <백조> 펴냄
* 김신용/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무크지『현대시시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버려진 사람들』『개 같은 날들의 기록』『환상통』『도장골 시편』,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기계 앵무새』『새를 아세요』, 산문집『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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