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제忌祭
백명희
프라이팬에 몸을 누인 너 표정이 없다 어쩌다 삶을 잃었는지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봐 살이 익는지 타는지도 모른 채 뒤집힐 때만을 기다린다
언니도 생의 마지막 한 달을 꼭 저 생선처럼 누워 있었다 뇌는 죽고 심장만 살아 산소호흡기에 생을 맡겼던 시간 바늘이 온몸을 퍼렇게 쑤셔 대도 동공 풀린 눈은 움직임이 없고 때마다 뒤집개로 뒤집듯 몸을 돌려 줘야 했다
치열했던 바다의 기억을 녹이며 조용히 타들어 가는 생선 조심스레 뒤집어 상에 올린다 허망한 삶끼리 마주한 제상, 이제는 좀 편안한가요?
향대의 연기가 자꾸만 흔들린다
-전문(p. 55)
해설> 한 문장: 전통 사회를 유지하는 일 중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관혼상제와 같은 제례 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도 상례나 제례는 가슴 아픈 기억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단순하게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있다. 프라이팬에 생선을 굽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를 떠올린다.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봐 살이 익는지 타는지도 모른 채 뒤집힐 때만을 기다"리는 생선을 보면서 "바늘이 온몸을 퍼렇게 쑤셔 대도 동공 풀린 눈은 움직임이 없고 때마다 뒤집개로 뒤집듯 몸을 돌려줘야 했"던 언니와의 동일시를 통해 시인은 속으로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p. 95)
중국 당나라의 탁발승 엄양존자가 선승禪僧 조주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가르침을 청하면서 "물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찌합니까" 물으니, 선사는 방하착放下着하라"고 했다. 이에 엄양은 "한 가지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하라는 말씀이신지요?" 하고는 몸에 지닌 염주와 지팡이를 내려놓고 선사의 눈치를 살피니 선사는 "착득거着得去하시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착득거는 지고 가라는 의미다. 이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그 자체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 문제가 내려놓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놓지 못하기 때문에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다보는 일과 같다. 이는 시를 쓰는 사람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다만 시인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의 과정을 돌아보는 동시에 독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객관화한다. (p. 84) <변종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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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달의 끝에서 길을 잃다』에서/ 2023. 12. 18. <시작> 펴냄
* 백명희/ 2015년『미네르바』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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