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윤명규
유인줄에 오르는 토마토 줄기
하늘을 끌어내리고 있다
스스로 날지 못해
손발을 뻗어 창공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줄레줄레 태생의 한계
딛고 걸을 수 없어
허공에 합장하며 오체투지 중이다
줄은 줄을 부르고
줄로 줄을 서다가
목덜미 살 속을 파고 들어가는 줄
흑수저의 호강일까
가진 건 핏줄밖에 없으므로
-전문-
해설> 한 문장: 토마토 줄기가 줄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삶도 역시 줄이 필요하다. 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한다. 하지만 줄은 "스스로 날지 못해/ 손발을 뻗어 창공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스스로 성장과 상승을 통해 하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성공하는 것이 줄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허공에 합장하는 오체투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공허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다가 결국 그 줄이 자신을 죽게 한다고 시인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 줄도 없고 '핏줄'만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을 얘기하면서 '핏줄'이 의미하는 끈끈한 생명의 힘만이 소중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p. 시 40/ 론 146)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
* 시집 『흙의 메일』에서/ 2023. 10. 31. <미네르바> 펴냄
*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허물의 온기』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제(忌祭)/ 백명희 (0) | 2024.01.07 |
---|---|
최후를 향한 고독 외 1편/ 윤명규 (1) | 2024.01.05 |
연기법(緣起法) 외 1편/ 정복선 (0) | 2024.01.04 |
헌화가(獻花歌)* 2/ 정복선 (2) | 2024.01.04 |
등감* 외 1편/ 엄세원 (0) | 2023.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