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최후를 향한 고독 외 1편/ 윤명규

검지 정숙자 2024. 1. 5. 02:33

 

    최후를 향한 고독 외 1편

 

     윤명규

 

 

  기러기 한 마리

  구름의 옷자락에 매달린 채

  끌려가고 있다

 

  날 부러진 새벽 초승달

  허공의 살 속에 예리하게 꽂혀있고 

  날개 죽지에서 울리는

  낡은 베어링 구르는 소리

  울컥거리는 추측 위로 떨어져 내린다

 

  깨끗하게 씻은 아침을 부리로 물고

  별들의 마을 골목 어귀 돌아

  교회당 십자가 넘어

  어머니의 길을 찾아 내달리고 있다

 

  서리 찬 하늘을 밀어낸 아침 별들이

  꼬리를 끌고 줄줄이 따라온다

 

  무리에서 벗어난 기러기

  무너져 내린 발자국이

  굉음을 내며 끝없이 팽창한다

 

  가다가 가다가

  더 갈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체념하듯 버리듯

  그렇게 생을 놓는 것일까

 

  숨찬 기러기

  오던 길을 삼켰다가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다

 

  이 아침

  최고로 쓸쓸한 바람이 분다.

      -전문(p. 38-39)

 

 

    ----------------

    흙의 메일

 

 

  흙은 내 외로운 빈 길이다

  울며 울며 가는 길

  길 위에 바람이 뒹군다

 

  속에는 멍든 나의 늑골이 숨 쉬고

  가끔씩 무지개가 두텁게 교각을 박는다

 

  살아 숨 쉬는 그 누구의 혈통들

  그곳에 왜 별똥별의 눈물이

  주저리주저리 추억을 털고 있는가

 

  죽었던 질경이 씨앗이

  일어나 새순을 당겨 올리는데

 

  신화처럼 썩어져 간 영웅들

  행성의 분말로

  밤의 입자들로

  무구한 세월을 깔고

  누워만 있을까

 

  말없이 들려오는 흙의 말들이

  강물처럼 출렁이고

  전설의 분자들 거기 떠있다

     -전문(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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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흙의 메일』에서/ 2023. 10. 31. <미네르바> 펴냄

  *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허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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