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멀리를 품다/ 김익경

검지 정숙자 2024. 1. 2. 00:46

 

    멀리를 품다

 

    김익경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바다가 있는지 모른다 단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를 보기 위해 이사를 한 것도 아니다

 

  처음 바닷가를 둘러본 것은 옆집에 인사하듯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 후 나는 옆집도 바다도 멀리한다 멀리는 얼마만큼의 거리인지 나는 모른다

 

  바다가 보인다고 꼭 바다를 봐야 하는 걸까

 

  이제껏 바닷가로 피서를 가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매일 바닷가에서 바닷가로 출근하고 바닷가로 퇴근한다

 

  질긴 바다, 질긴 것들은 모두 봉인된 관처럼 함부로 뚜껑을 열 수 없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위로합니다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하다

 

  바다는 멀리를 품고 있다

 

  자꾸만 바다가 나를 가깝게 한다

 

  나는 언제든 멀리 가고 있다

     -전문(p.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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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김익경/ 2011년 『동리목월』로 등단, 시집『모음의 절반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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