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병입니다
김태
'자살은 병입니다. 치료하세요.'
노인 자살률이 높아졌다며 막막해하는 보건소장에게
그런 현수막을 걸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고 돌아오는데
'사는 맛이 있어야 살 거 아니에요?'
배웅하던 여성 계장이 푸념해서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뒤를 따라왔다
사람과 돈 다 곁에서 떠나버리면
사는 재미는 없고 병든 몸과 화만 남아서
남은 것은 바람 스미는 낡은 헛간 같지 않을까
사람과 돈, 사람과 돈, 사람과 돈 되뇌다보니
내가 예전에 뭔가를 동경했었다 싶은 기억이 부끄럽게 떠올랐다
사람과 돈이 아니어도 살아갈 만한 삶이 있다고 믿었는데
거기선 고독도 못난 일이 아니고 가난도 부끄러울 것 없어서
홀로 고요하고 평안한 삶!
사는 것이 그렇게 매끈할까, 젊음처럼 매끈할까
이를테면 밭의 잡초를 뽑으며
봄을 보내고 또 봄을 보내고 꿈 또한 보내다가
이내 봄이 와도 혼자 멀거니 잡초밭을 쳐다보며
힘에 부쳐 한숨짓는 삶이 말이다
오늘 나는 설익은 말이나 던지고
'사는 맛이 있어야 살 거 아니에요?'
하는 말에 마음이 금방 갈라져서
가슴으로 커다란 바람이 불어가는 듯했으니
나는 삶에도 죽음에도 병의 굴레나 씌우고 있구나
-전문(p.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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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김태/ 2019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저서 그래픽노블『고흐와 추억』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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