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송기한_미메시스적인 뚜렷한 응시와···(발췌)/ 소금쟁이 : 박이도

검지 정숙자 2023. 12. 28. 02:22

 

    소금쟁이

 

    박이도

 

 

  수면水面은 투명透明한 대리석大理石

  조심스레 내려앉은 구름과

  밀어대는 실바람에

  두둥실 소금쟁이가 등장한다

 

  가벼이, 날렵하게 춤추는

  물 위의 춤꾼

  수면에 미끄럼을 지치다가

  돌연 허공을 훌쩍 넘어 뛰는 곡예사

  수초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신기神奇

  실바람 꽃바람 원무곡圓舞曲에 맞춰

  빙글빙글 원무를 그리는

  소금쟁이

    -전문-

 

  미메시스적인 뚜렷한 응시와 그로부터 피어나는 생생한 자연/-박이도의 시세계(발췌)_ 송기한/ 문학평론가

  자연에 대한 섬세한 미메시스적 묘사는 인용 시에 이르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지금 화자는 고인물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소금쟁이를 유난히 응시한다. 미세한 관찰이 얻어내는 시적 의장이 이미지즘의 수법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터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근본 동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맑은 물 위의 모습을 "수면은 투명한 대리석"이라고 한 것이나 "실바람 꽃바람 원무곡에 맞춰/ 빙글빙글 원무를 그리는 소금쟁이"는 이 수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그림이기 때문이다.

 

       (··略··) 

 

  박이도의 시에서 자연은 긍정적으로 구현된다. 시인은 일상성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담론화하거나 또 그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의 손길을 내민 적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애써 외면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자연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고, 그것이 주는 교훈에 깊이 물들어 있다. 시인은 굳이 대상이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비판의 촉수를 들이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개연성이 큰 것처럼 보인다. 자연이 갖고 있는 긍정적 가치에 대해 언표화하고 이를 선양하는 것만으로도 부조리한 현대 사회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맑고 투명한 자연의 가치,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연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담론화하는 것, 그것이 박이도 시인이 추구하는 자연의 미학이다. 현실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결코 무관하지 않은 함의가 담겨 있는 것, 이 또한 박이도 시인이 갖고 있는 자연미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단면들을 가능케 했던 것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를 통한 미메시스적 모사의 정확성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저 멀리 외따로 홀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으로 인간 사회에 오버랩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일상성을 반추해보는 것, 그것이 박이도 시가 갖고 있는 자연관의 큰 특징적 단면이라 할 수 있다. (p. 시 189/ 론 193-194 (···)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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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동행 집중 5 박이도의 시세계> 에서

 * 박이도/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皇帝와 나」로 등단, 시집『회상의 숲』『바람의 손끝이 되어』『안개주의보』『약속의 땅』등

 * 송기한/ 문학평론가, 대전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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