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용량 제한/ 김일태

검지 정숙자 2024. 1. 1. 01:05

 

    용량 제한

 

     김일태

 

 

  잊히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넘어져 본 이들은 안다

 

  잊는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다시 일어서 본 이들은 안다

 

  잊힌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위해

  자리 비워준 것이기에

  잊지 않으면 잃은 게 아니다

 

  나이 든 이들에게

  오랜 기억보다

  금방의 기억을 먼저 지우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초과 저장되어 넘치지 않도록

  신은 우리의 머리 기억용량을

  200기가바이트 정도로

  제한해 두었다

    -전문(p. 88)

  ---------------------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김일태/ 199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부처고기』외 8권, 시선집『주름의 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