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유실물/ 박미산

검지 정숙자 2023. 12. 27. 15:51

 

    유실물

 

    박미산

 

 

  지하철 두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오가던 지하철 창에 이십 대 그녀와 내가 완벽하게 합쳐졌다

  그녀의 몸과 나의 얼굴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하철을 달린다

 

  단풍이 피어오른 지상은 눈부시다

  축제를 했던 운동장은 어디로 갔는지

  낯선 학교 건물들만 켜켜이 쌓여 있다

 

  호랑이 어깨를 두드리며 미리 온 가을

  졸업사진을 일찍 찍는 그들이 내 옆구리를 치며 달려간다

  미친 목련, 다람쥐길, 대도관

  모르는 길을 무조건 노 젓던 이십 대

 

  최루탄에 흘리던 눈물

  몇 날 며칠 고함질러 갈라진 목소리

  끊어지던 문장들

  황톳빛 물이 거리를 휩쓸 때도

 

  구름 속에서 왔다 갔다 흔들리는 대낮의 햇볕은 이제 안녕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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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박미산/ 2006년『유심』으로 & 2008년⟪세계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루낭의 지도』『태양의 혀』『흰 당나귀를 만나 보셨나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