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과 시상식
한명희
하나만 남기고 다 버릴게요
집 안 정리를 도와주러 온 도우미 아줌마가
하나만 남기고 다 버릴게요 할 때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하나하나 사연이 있고
제각각 용도가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는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하나가 되지 못한 것들은
쓰레기봉투로 던져진다
가차 없이 버려진다
정리하는 건 결국
버리는 것이다
하나만 남기고 모두 버리는 것이다
결혼식이 그렇고
시상식이 그렇다
반듯하지 못한 내 생활도 결국은
버리지 못해서 생긴 일
망설이고 망설이는 사이
어질러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 삶이 증명하듯
남은 하나가 최고는 아니었다
결혼식이 그랬고
시상식이 그랬다
생각이 늘어나는 사이
쓰레기봉투는 하나 가득이 된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을
저렇게 가뿐히 해내는 사람이 있다
어쨌든 하나씩만 남은 것들을 데리고
결혼식에도 가야 하고
시상식장에도 가야만 한다
가는 데까지는 가보아야 한다
-전문(p.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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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한명희/ 1992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꽃뱀』『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두 번 쓸쓸한 전화』『시집읽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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