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마침내/ 서경온

검지 정숙자 2023. 12. 28. 01:32

 

    마침내

 

    서경온

 

 

  기다리던 산사태 일어났다

  백 년 전에 매몰되었던 아픈 기억의 전설

  위태롭던 노르웨이 베슬레머넌

  산봉우리 무너졌다

  차마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아침마다 하늘 바라보며

  이주를 마다하던 마을 사람들은

  열일곱 번째 경보로 대피하다가

  엄청난 토사와 바위가 쏟아져 내릴 때

  천둥처럼 환호하였다

  앞으로 한동안은 안심하리라

  우리 생애 몇 번쯤 어느 길목

  골짜기 마을 떠나지 못하고

  날마다 하늘 기색을 살피며

  숨죽이며 기다리는 일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차라리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관계의 시간

  공포가 불안보다 낫다는 말 이제는 알겠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전문(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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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서경온/ 198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하늘의 물감』『흰 꽃도 푸르다』『당신이 없을 떄의 당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