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과 이곳
구석본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휴대전화로 친구가 알려 왔다
늦가을 길 위에 낙엽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나무의 우듬지에 아직 남은 잎들이 바람에게 속삭인다
그분이 졸아가셨어요 방금,
낙엽을 줍는다
한 생을 돌고 돌아 돌아가신 그분,
여름 한 철 갈참나무를 갈참나무이게 했던 이파리
이제는 바스라져 갈참나무 이름이 지워진 채
바람에 휩싸여 돌아간다.
다시 낙엽이 떨어진다.
방금 돌아왔어요
이름이 지워진 채, 낙엽이 되었어요.
낙엽에는 이름이 없어요, 그냥 낙엽이 될 뿐이에요.
저 위를 보세요.
허공과 맞닿은 우듬지에 아직 남은 잎들이 펄럭인다
저곳을 돌고 돌아 이곳으로 돌아왔어요,
마침네 돌아온 이곳은,
저곳에서는 아득한 허공이었어요.
낙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바람으로 돌아, 돌아간다.
허공 속으로 돌고 돌더니 저곳에서 허공이 된다.
이곳에서 보는 저곳의 허공이 된다.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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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에서
* 구석본/ 197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지상의 그리운 섬』『쓸쓸함에 관해서』등『추억론』『고독과 오독에 대한 에필로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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