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
채길우
아이는 밤새 또래들과
술을 마시다 돌아왔다.
도대체 왜 사냐,
묻지도 않고 그가 아이를 향해
손부터 들어올릴 때 더이상
아이는 그를 피하지 않는다.
언제 낳아 달라고 했어?
말문이 막혀 멈춰 있는 동안
문득 호젓하고 파란 문양 같은 표정의
아이가 그새 많이 컸다.
가마 곁에서
갓 구워진 흠집 난 것들을
부수어야 했을 때
어째서 그릇이 아니라
제 손을 치지 못했던가
유약 바른 눈동자 속에서
물레와 함께 빙글빙글 부풀어 오르다
반드럽게 뭉개져 흘러내리는
구겨진 점토만큼 맑은 것
저 파이고 금이 간 자국을
닦아주어야 할까, 망설이다가
이제 자신이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는 손을 거두고
바라다본다, 손가락 사이로
가만히 처음 마주하는
작자 미상의 작품처럼
아이가 많이 자랐다.
-전문(p. 39-40)
▶ 도공의 유비와 순수의 본면/ 채길우의 시 「도공」을 읽으며(발췌)_ 이재훈/ 시인
시에 등장하는 아이는 방황 중이다. 아이의 방황을 이해화는 사람은 또래들일 것이다. 밤새 또래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이, 아이는 이미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부모일 것이다. "도대체 왜 사냐"는 말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가끔씩 던지는 흔한 말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 그 말은 총알처럼 가슴에 평생 박힐 수도 있다. 아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픈 말은 "언제 낳아 달라고 했어?" 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말이다. 이미 낳았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왜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고 나의 부모와 같은 존재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는지 분노하는 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정체성의 탐구로부터 출발한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파괴하고 방황해야 비로소 자신의 본명과 마주할 수 있다. 화자는 비로소 아이가 많이 컸다는 것을 직시한다.
시는 아이의 양육을 가마에서 그릇을 굽는 도공의 역할에 비유한다. 가마에서 흠집 난 그릇을 책임지는 것은 그릇이 아니라 도공의 손일 것이다. 그릇의 재료는 순수하고 맑고 올곧다. "유약 바른 눈동자"는 물레처럼 세상을 돌고 돈다. 때론 "빙글빙글 부풀어 오르다/ 반드럽게 뭉개져 흘러내리"기도 한다.원재료는 맑다.
맑은 눈동자가 깨진 그릇이 되기까지 도공은 무엇을 했을까. "파이고 금이 간 자국을/ 닦아주어야 할까"를 망설이는 도공은 비로소 자신이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을 이해한다. 처음이다. 가장 최초의 작품으로 되돌아가는 것. 도공이 마련한 가장 순수한 원재료로 되돌아가는 것. "처음 마주하는 작자 미상의 작품"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그릇을 바라보는 것. 이쯤에 오면 그가 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가장 정직하고 사랑스럽고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했을 것이다. 도공이, 그가 바라봐야 할 것은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릇을 볼 필요가 없다. 그릇을 만든 내 손을 보아야 한다. 때뜨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당연한 시적 진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그가 나로 바뀌고 아이가 나의 딸이나 아들로 바뀌며 시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때론 아이가 시詩로 바뀌기도 한다. 시의 오마주로 읽어도 무방한 작품이다. (p. 시 39-40/ 론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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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동행하며, 소통하며 5 이재훈 채길우> 에서
* 채길우/ 2013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매듭법』『측광』
* 이재훈/ 199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다』『벌레신화』『생물학적인 눈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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