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미래
이재연
누가 합해지거나
나누어지거나
사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해하려고 하던 노력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아보카도 씨앗에 물을 끈질기에 갈아 줍니다
안에서도 밖이 환히 보여
자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 밑에 의자가 버려져 있습니다
의자 옆에 창문도 버려져 있습니다
간혹 버려지는 노년도 있어
좀 더 많이 걷고 있습니다
많이 웃어 주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미래처럼 다가왔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아보카도 씨앗에 주는 물을 끈질기게 갈아 주고 있습니다
나무를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두고 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밖에 무엇을 두고 보자는 심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물로 끝을 보자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모두들 앞으로 가고 있지만
얼굴을 가렸습니다
세계가 가렵습니다
이제 그만
무엇이 태어날지 모르는
아보카도 씨앗을 흙에 묻어 줍니다
당분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이 노선으로 가고 있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간에 대한 시인의 감각을 따라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를 읽어 가다 보면 문득 도래하는 미래의 시간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객관적 시간이라는 것이 더 이상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인에게 시간은 대상들의 고정된 의미와 더 이상 결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에서 강조되고 있는 행위처럼 "아보카도 씨앗에 주는 물을 끈질기게 갈아" 주는 현재의 반복일 뿐입니다.
이 행위를 이해해 보기 위해서 들뢰즈의 말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역시 시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존재를 해명하고자 했는데, 먼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이 겹쳐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래에 주목했는데 과거는 미래의 조건이며, 현재는 미래의 행위자로서 다시 미래에 속한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특히 니체에서 비롯한 영원회귀를 하나의 역량으로 봤습니다. 다양한 것, 차이 나는 것 그리고 우연한 것들을 반복시킴으로써 새로운 차이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이렇게 '차이'만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미래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와 연관 지어 이 작품의 행위를 다시 보자면 바로 끝없이 차이를 생성하는 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이 행위는 결과물로서 "나무를 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행위 주체자인 '나'에게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차이의 생성만을 염두에 둔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현재 시간을 미래에 차이를 도입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 반복을 통해서 다시 되돌아온 현재의 시간은 가치 공유를 내세워 '현재'를 유지하는 폭력적인 동일성의 원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어 줍니다. (p. 시 118-120/ 론134-182) (남승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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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에서/ 2023. 12. 15. <파란> 펴냄
* 이재연/ 전남 장흥 출생, 2012년 제1회 오장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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