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
이희주
동해에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는다. 머리 하얀 사람 홀로 즐기는 늦은 아침. 이 먹먹한 쾌감은 무엇일까. 어제 주문진은 밤새 등댓불에 파도들이 잠을 설쳤고 나는 퇴직 후의 계획을 묻는 친구에게 그냥 고요해지는 거라고 말했다. 성의 없는 대답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다독여 우동을 먹다가 문득
직장에서의 마지막 퇴근길, 진정 이 길이야말로 이제서야 나를 내게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던 그날을 생각한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지. 따지고 보면 직장생활도 머나먼 여행이었어. 동해에서 돌아오는 길, 홀로 점심을 먹으며 나에게 나의 길을 묻는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길, 버렸던 꿈을 되찾는 길, 온전히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길에 대하여.
-전문-
해설> 한 문장: 인용 시에서 화자는 퇴직 후의 계획을 묻는 친구의 말에 "그냥 고요해지는 거"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마치 선문답처럼 보이는 이 문답 속에, 화자는 어떤 의미를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 고요해진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화자는 이어지는 연에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여행의 의미를 정의한다. 우리는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이 완성되는 것은 그것이 다시금 일상으로돌아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인생이란 늘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인생이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실하게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 아닐까. 스스로로부터 갈수록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스스로에게 가까워지는 일. 산다는 건 사실 그런 일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중요한 것은 사실 인생의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인생을 어떻게 감각할 것이냐는 주관의 문제이며 그것을 진실로 믿을 수 있는가라는 믿음의 문제가 된다. 화자가 말한 고요해진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주관을 통해 삶을 다시금 역산하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거머쥔 삶의 의미를 진실로 믿으며 사는 삶의 태도, 바로 그것이 고요해진다는 일의 진실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히 자신의 본질로부터 멀어져가는, 정처 없는 슬픔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처 없는 슬픔이란 고요해지는 길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여행의 시련에 가깝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우리가 정녕 조금이나마 나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성장통인 것이다. (p. 시 43/ 론108-109) (임지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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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 에서/ 2023. 12. 18. <문학의전당> 펴냄
* 이희주/1962년 충남 보령 출생, 1989년『문학과 비평』에 시 16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저녁 바다로 멀어지다』, 地上同人 시집 『물에 의지하는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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