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여전히 나무는 나무 외 1편/ 김경성

검지 정숙자 2023. 12. 17. 02:22

 

    여전히 나무는 나무 외 1편

 

     김경성

 

 

  느릅나무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톱날이 몇 번 지나가자

  새집이 바닥에 떨어지며 새들의 가계가 허물어져 버린다

 

  새들을 품었던 나무는 한 품이 되어 트럭에 실려 갔다

  순식간에 집을 잃은 새들, 날아가지 않고

  나무가 있던 허공을 맴돈다

 

  톱밥이 되어 쌓여 있는 나무의 말들

  바람이 휘감으며 읽는다

 

  달의 잔향이 남아 있는 새벽

  나무가 있던 자리에 정령들의 발자국이 깊다

 

  여전히 나무는 나무

  새들이 그루터기에 앉아 있다

     -전문(p.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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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의 저녁

 

 

  물의 결이 겹겹이 쌓이는 저녁이 오고 있다

 

  멀리 왔으니 조금 오래 머물고 싶다고

  지친 어깨에 내려앉는 노을빛은 붉고

  무창포 바다 왼쪽 옆구리에 쌓이는

  모란의 결

 

  누군가 마음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놓았는지

  꽃잎 사이사이 조약돌 같은 꽃술이 바르르 떨린다

 

  바다가 너울너울 무량하게 피워내는

  모란

  바람의 깃에 이끌려 꽃대가 흔들린다

 

  초승달에 걸린 바다가

  허물어진다

  모란이 지고 있다

      -전문(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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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모란의 저녁』 에서/ 2023. 11. 23. <문학의 전당> 펴냄

  * 김경성/ 전북 고창 출생,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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