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뭐래?
정끝별
모래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
모래는 무얼 포기하고 모래가 되었을까?
모래는 몇천 번의 실패로 모래를 완성했을까?
모래도 그러느라 색과 맛을 다 잊었을까?
모래는 산 걸까 죽은 걸까?
모래는 공간일까 시간일까?
그니까 모래는 뭘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모래는 어디서 추락했을까?
모래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닮았을까?
모래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래는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까?
모래는 우주의 인질일까?
설마 모래가 너일까?
허구한 날의 주인공들처럼
-전문-
해설> 한 문장: 만약 이 시에 하나의 질문만이 들어 있다면, 그 질문은 결정적인 질문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자꾸 늘어난다면, 그 어떤 질문도 결정적인 질문이 될 수 없겠지요. 시인은 그렇게 어떤 결정적인 질문을 끌어내는 대신, 더 많은 질문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마치 아이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모든 대답을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복은 강조의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약화와 무화의 기능 또한 갖고 있지요. 그러나 반복이 수행하는 약화와 무화는 대상을 지우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희박해지는 순간,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아이의 질문이 대상을 이해하는 일인 한편,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한 것처럼, 이 시 또한 모래를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지만, 그것과는 또다른 이해에 도달합니다. 그 이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모래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로 시작한 질문이 "설마 모래가 너일까?"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모래에 대한 질문은 영원히 마주할 수 없는 타자인 '너'에 대한 의식으로 확장되고, 너무 많아서 무의미에 가까운 저 무수한 모래알들은 '너'라는 한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이 시의 제목이 '모래는 뭐래?'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래에 대해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모래를 정의하는 일에 그쳐버리겠지만, 시인은 과잉된 반복을 통해 모래에 대한 섣부른 정의와 시적인 깨달음으로부터 달아납니다. 대신 시인은 모래가 뭐라고 하는지 알고자 합니다. 내가 모래에 대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래가 무엇이라 말하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너'를 진정으로 만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 시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p. 시33/ 론 137-138) (황인찬黃仁燦/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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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모래는 뭐래』 에서/ 2023. 5. 4. <창비> 펴냄
* 정끝별/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 수상 &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 참이고 덤입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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