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우산/ 김경성

검지 정숙자 2023. 12. 17. 01:59

 

    우산

 

    김경성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한결같이

  날개를 활짝 편, 새 한 마리씩 데리고 간다

 

  저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새는 숲으로 들어가고

  어떤 새는 골목길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날지 못하는 새는 눈물 흘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날개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소한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젖어 있을 때만

  날개를 펼 수 있는 새의 운명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날개 접은 새를 안고 버스 뒷자리에 앉는다

  버스 문이 여닫혀도 놀라지 않고

  부리로 무언가를 쓴다

 

  모스부호 같은 것을 읽느라 내릴 곳을 놓쳐버린 나는

  우음도 가는 사강 어디쯤에서

  지도에도 없는 길 너머로

  젖은 새를

  날려 보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착안하여 이미지화한 작품이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란 일차적으로 비 오는 날, 곧 해가 뜨지 않는 날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다는, 물리적인 사실에서 비롯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시를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나면 그것이 슬픔이나 상처 등을 드러내지 않는, 혹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표상임을 알게 된다.

  이 시에서 '우산'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데리고 다니는 새'로 의미화되고 있는데 이 '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에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의 슬픔쯤으로 이해된다. 누구나 슬픔 하나씩은 짊어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인데, 어떻든 이 시에서도 슬픔은 전달되지 않는다. '새'가 "날지 못하는 새"이며 "눈물 흘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새'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데리고 다니는 '새'로, 타자의 슬픔이 아니라 자아 자신의 슬픔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존재는 자신의 슬픔에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서정적 자아는 "날개 접은 새를 안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새'가 부리로 쓰는 '무언가'를 읽는 것에 열중한다. 이는 자아가 슬픔에 빠져 있다는 의미도,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슬픔의 의미를, 그 본질을 알 수는 없다. (···) 결국 언어라는 상징체계의 질서 속에서는 슬픔의 본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자아가 "지도에도 없는 길 너머로 새를/ 젖은 새를/ 날려 보"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 시64-65/ 론 120-121) (박진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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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모란의 저녁』 에서/ 2023. 11. 23. <문학의 전당> 펴냄

  * 김경성/ 전북 고창 출생,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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