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황강록
낡은 인간들이 새로 변한다. 우린
부스러진 더러운 깃털과 울음소리를 들었을 뿐, 어디선가
누군가의 자식들이 성의 없이 울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스팸 전화로 우린 짜증이 나 있지만 이 낡은 거리에
이렇게나 새가 많았던가? 우리는 이 새들의 이름을 알았나? 살아온 역사는?··· 광장엔 태극기들이 흩날리고, 목사는 스피커로 난해한 기도를 쩌렁쩌렁
외치고 있지만, 저 많은 새들은 날개가 있음에도
날아가려 하지 않고, 노래할 수 있음에도
노래하지 않고, 그저 과자 부스러기나 취객의 토사물을 찾아서 먼지처럼 우수수···
광장의 이곳과 저곳을 돌아다닌다. 한 끼니의 절망과 분노가 편의점 전자레인지에서 데워지고
누군가의 자식들은 엄마, 아빠가 새로 변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도시 환경을 탓하고, 바뀌는 입시제도에 적응하느라 바쁠 뿐이다. 아이들이 수능을 준비하는 뒷골목 학원가에도 새들은 모여 있고, 더 나이 든 아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원 촌 지붕에도 불청객처럼 옹기종기···
낡은 사람들이 새로 변한다는 소문은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시사 다큐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새는 불길하다며 새에 대해 보도하던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 변할지도 모른다며··· 흩날리는 태극기들 너머 새들이 마지못해 드디어
난다. 마지못해 웃는다. 소주와 국밥 한 그릇짜리 일당을 좇아, 우수수··· 마치 회색의 건물들이 부스러져 떨어지는 것 같다. 아주 높은 아파트들이 꼭대기에서부터 부스러져
떨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는 날아오르는 것 같고, 누군가는 노래하는 것 같다. 난 이 슬프고도 우스운 풍경을 보고 있기 힘들다. 하지만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것 같기에
아무도 소식을 알리거나
신고하거나 보도하고자 하지 않는 것 같기에
눈꺼풀이 없는 물고기 천사처럼
크게 눈을 뜨고 바라볼 뿐, 새들이 부스러져 떨어지듯
날아가는 것을
-전문(p. 34-36)
*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인 세계 1위라고 한다. 고독사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우간다나 캄보디아도 아닌 우리 나라가 말이다. 너무 많아진 자살은 최진실과 노무현을 지나 쉽게 보도도 되지 않으며 시사 프로그램들도 잘 다루지 않는다. 자살 보도가 많아지면 모방 자살이 많아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내게는 자꾸만 자살이나 고독사라는 말이 사회적 살인이나 폐기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광장 한구석에는 드문드문 태극기들이 흩날리고 스피커가 쩌렁대고 비둘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다. 난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벤치 한쪽에 앉아 있고, 한 할머니가 뭘 그렇게 오랫동안 스마트폰으로 쓰고 계시냐며, 자기가 복되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신다며 말을 걸어오신다. 예술과 현실은 이렇게 서로의 살을 부빈다. (p. 36)
해설> 한 문장: 황강록 시인은 우리가 '벤야민'적 인간이라고 규정해 볼 때, 그리고 파울 끌레의 '앙겔루스 노부스'이자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의 시선을 가진 자라고 이해했을 때, 그가 바라보는 무가치한 세계의 이면이 어떠한지를 이 시는 잘 보여준다. 시인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계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난 이 슬프고도 우스운 풍경을 보고 있기 힘들다"라고. 즉 슬프고도 우스운 '파편' 같은 세계 속에서 무엇을 보고 사유해야 하는지를 이 시는 묻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가 그저 정의롭고 빛나며 화려하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낡은 인간"이자 "새"일 뿐이라는 것. 우리들의 "부스러진 더러운 깃털과 울음소리"는 이 세계 "어디선가" 있겠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 깊은 비애감이야말로 「광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묻는다, "이렇게나 새가 많았던가? 우리는 이 새들의 이름을 알았나? 살아온 역사는?···" 그러나 지금 우리의 광장에는 "태극기와 목사의 난해한 기도"만이 울려 퍼진다. 아무도 여기에 이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은 없다. 그러니 이 '새'들은 말하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래하지 않고, 그저 과자 부스러기나 취객의 토사물을 찾아서 먼지처럼 우수수···" 떨어지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저 목소리들 사이에서 들리지 않는 "한 끼니의 절망과 분노"를 품은 새들은, 보이지 않지만 보여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씌어지지 않은' 시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p. 시34-36/ 론 134-135) (김정현/ 문학평론가)
---------------------
* 시집 『조울』 에서/ 2023. 9. 25. <한국문연> 펴냄
* 황강록/ 1969년 서울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지옥에서 뛰어놀다』『벤야민 스쿨』, 연극 · 영화 · 뮤지컬 · 방송 · 음반 등의 작곡가 또는 음악감독으로 활동해 왔고, 1999년 서울국제연극제무대예술상 수상했으며, 2002년부터 명상수련을 하고 있음.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산/ 김경성 (0) | 2023.12.17 |
---|---|
검고 푸른 날 외 2편/ 황강록 (0) | 2023.12.16 |
우리 집 구도 외 1편/ 최휘 (0) | 2023.12.15 |
키티가 생각나지 않는다/ 최휘 (0) | 2023.12.15 |
손쉬운 바다 외 1편/ 고명자 (0) | 202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