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늘과 죄/ 정영주

검지 정숙자 2013. 3. 8. 02:31

                                     

                                             

    바늘과 죄

 

     정영주

 

 

  나의 낮까지도 

  나의 밤으로 쓴다

  나의 밤까지도 나의 낮으로 쓴다

  

  카펫에 떨어져 숨은 작은 바늘이 벌써 세 개째다

  털이 깊어 바늘은 찾을 수 없는 심해다

  밤낮이 온통 카펫에만 쏠려 있다

  

  지남철로 협박하고

  전등을 들이대도 바늘 잠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내 죄도 저러하겠다, 싶어 안전부절해진다

  토설할 수 없었던 꽁꽁 묶어 둔 어둠의 계보들

  

  숨은 바늘의 속성이 내 심장을 파고든다

  그래, 죽자, 같이 죽자

  두 손바닥으로 카펫을 훑는다

  바닥에 힘을 주고 처절히 찔리도록

  깊게 찔려 바늘이 들키도록

  내 뜨거운 피가 들키도록

 

  순간, 바짝 엎드린 바늘이 바짝 훑는

  내 손바닥으로 깊게 찌르며 들어온다

  한참 머뭇거리던 피가, 먹피가

  어쩌지 못하고 쏟아진다

  바늘처럼 길고 검은 줄기 피, 하얀 카펫에

  빛나는 죄를 쏟는다

 

 

  * 시집『달에서 지구를 보듯』/ 2013.2.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영주/ 1999년《서울신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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