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죄
정영주
나의 낮까지도
나의 밤으로 쓴다
나의 밤까지도 나의 낮으로 쓴다
카펫에 떨어져 숨은 작은 바늘이 벌써 세 개째다
털이 깊어 바늘은 찾을 수 없는 심해다
밤낮이 온통 카펫에만 쏠려 있다
지남철로 협박하고
전등을 들이대도 바늘 잠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내 죄도 저러하겠다, 싶어 안전부절해진다
토설할 수 없었던 꽁꽁 묶어 둔 어둠의 계보들
숨은 바늘의 속성이 내 심장을 파고든다
그래, 죽자, 같이 죽자
두 손바닥으로 카펫을 훑는다
바닥에 힘을 주고 처절히 찔리도록
깊게 찔려 바늘이 들키도록
내 뜨거운 피가 들키도록
순간, 바짝 엎드린 바늘이 바짝 훑는
내 손바닥으로 깊게 찌르며 들어온다
한참 머뭇거리던 피가, 먹피가
어쩌지 못하고 쏟아진다
바늘처럼 길고 검은 줄기 피, 하얀 카펫에
빛나는 죄를 쏟는다
* 시집『달에서 지구를 보듯』/ 2013.2.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영주/ 1999년《서울신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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