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고경숙
내 우울은 절정과 통합니다
벚꽃 화사하게 핀 봄의 한가운데
돌발적인 우울 앞에
곧잘 죽음을 동경합니다
라고,
누구에겐가 얘기한 적 있는데
단풍 색색으로 빛나는 투명한 가을날이나
고립된 설야에도
마찬가지예요
라고,
눈을 바라보며 얘기한 적 있는데
나는 우울에 힘주어 말했지만
상대는 내 입 모양만 바라보았죠
단호한 세상은
무덤덤한 연인처럼
죽음의 예보를 곧잘 무시하더군요
극에 달한다는 것은
벚꽃 만개한 청춘도
낙엽 수북한 황혼도 아닌
그저 겨울로 난 길을 끝없이 걷다 지치는 것,
돌아보지 못하는
돌아오지 못하는
레테의 강가에서 조용히 신발을 벗는 것
* 시집 『혈을 짚다』에서/ 2013.1.15 <북인> 펴냄
* 고경숙/ 2001년 계간『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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