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화려한 외출/ 고경숙

검지 정숙자 2013. 3. 8. 02:08

 

 

     화려한 외출

 

     고경숙

 

  내 우울은 절정과 통합니다

  벚꽃 화사하게 핀 봄의 한가운데

  돌발적인 우울 앞에

  곧잘 죽음을 동경합니다

  라고,

  누구에겐가 얘기한 적 있는데

 

  단풍 색색으로 빛나는 투명한 가을날이나

  고립된 설야에도

  마찬가지예요

  라고,

  눈을 바라보며 얘기한 적 있는데

  나는 우울에 힘주어 말했지만

  상대는 내 입 모양만 바라보았죠

 

  단호한 세상은

  무덤덤한 연인처럼

  죽음의 예보를 곧잘 무시하더군요

  극에 달한다는 것은

  벚꽃 만개한 청춘도

  낙엽 수북한 황혼도 아닌

  그저 겨울로 난 길을 끝없이 걷다 지치는 것,

  돌아보지 못하는

  돌아오지 못하는

  레테의 강가에서 조용히 신발을 벗는 것

 

   * 시집 『혈을 짚다』에서/ 2013.1.15 <북인> 펴냄

   * 고경숙/ 2001년 계간『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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