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우리 집 구도 외 1편/ 최휘

검지 정숙자 2023. 12. 15. 02:04

 

    우리 집 구도 외 1편

 

     최휘

 

 

  우리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갔어

  나는 벤치에 앉아 이 생을 생각하고 있었지

  우리 집 개 이름은 인생이야

  늘 생을 뛰어다니고 냄새를 맡고

  말도 잘 안 듣고 꿈속에서까지 짖어 대고

  꼭 사람처럼 인생을 다 안다는 듯 킁킁대고 지랄이야

  그래도 한 식구니까 간식을 내밀었지

  가족은 나무 그늘에 서서 자꾸 뭐를 흘리면서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삼각형은 안정된 구도라고 배웠어

  그런데 저 인생이 와서 꼬리를 흔들며 받아먹어야

  너, 나, 인생이라는 삼각구도가 되는데

  개놈이 저만치 서서는 내가 먹이를 내밀고 있는 줄 알면서도

  목을 틀어 더 바깥을 보고 있는 거야

  저 엉뚱한 시선이 닿지 않아 삼각구도가 약화되고 있어

  인생아! 소리쳐 불러도 인생은 자꾸 저 먼 곳만 바라봐 

 

  가족은 왜 늘 나무 그늘에 기대어 비웃고 있는 걸까

  나는 삼각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믿을 건 인생밖에 없는데

  멈추질 않아, 욕이

  이 개놈아! 이 인생아!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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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여름

 

 

  비단뱀이 울창한 여름 나무 아래를

  리리리 리리리리 기어간다

 

  피자두가 주렁주렁 열린 자두나무 아래를 기어가며

  열흘은 지나야 먹을 수 있대

  라고 한다

 

  자둣빛 구름 사이로 멀어진 마음이

  두 줄의 비행운으로 지나간다

  참 속상했겠다

  지나간 날들을 쓱쓱 핥아 주는 바람 같은 말

 

  청포도 참외 토마토 오이 감자 옥수수

  함께했던 여름들이 지천이다

 

  여름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뙤약볕 아래를 누비며

  아 더워, 라고 말하면

  들은 듯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이제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차라리 나를 사랑해 버렸어

  난, 여름

  이렇게 말할 거다

     -전문(p.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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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난, 여름』 에서/ 2023. 10. 23. <시인의일요일> 펴냄

  * 최휘경기 이천 장호원 출생, 2012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동시집『여름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