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졸라/ 윤석산

검지 정숙자 2013. 3. 7. 01:20

 

 

    졸라

 

     윤석산

 

 

  고등학교 국어교실, 선생님은 열심히 우리말 쓰임에 관하여 설명하신다.

 

  "아름답다, 라는 형용사를 꾸며주는 부사어는 참으로 많아요. 무척 아름답다. 꽤 아름답다. 굉장히 아름답다. 참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매우 아름답다. 등등은 큰 뜻에 있어서는 서로 같지만, 실은 그 뜻이 서로 조금씩 다르고, 말맛 역시 서로 조금씩 달라요. 이렇듯 우리말에는 그 맛이 서로 다른 말이 많지요. 그만큼 우리 민족이 다양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뒷자리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여드름투성이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뭐 그렇게 복잡하게 말씀하세요. 그저 졸라 아름답다 하면 다 되는데요."

 

  졸라, 그렇구나. 뭐 복잡하게 많은 말들을 할 필요가 없구나. 미묘한 말맛은 느껴 무엇하리요. 그저 졸라 아름다우면 되는 것을. 우리는 오늘 그저 앞만 보고 졸라 달려야 하는 졸라공화국의 백성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 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에서/ 2013.1.28  <푸른사상사>펴냄

   * 윤석산/ 서울 출생, 1967년 《중앙일보》신춘문예-동시,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시 당선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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