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형엽_귀의 이동과 눈의 응시,···(발췌)/ 응시 : 정재학

검지 정숙자 2023. 12. 13. 13:55

 

    응시

 

    정재학

 

 

  빌딩들이 모두 길을 막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출구를 찾아 맴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죽은 쥐들이 밟히는 것일까 건물의 창문마다 혀가 날름거린다 귀가 무거워 쓰러진자 문을 든 사람들이 귓속에서 걸어나왔다 어떤 문을 열어도 납으로 된 이빨들이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의 오려진 입술이 떨어진다 나는 피가 흐를 때까지 얼굴을 아스팔트에 문질렀다 새들이 노래하지 않을 때마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약물을 끊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지한 자동차의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왜 저 흐린 풍경이 이토록 눈부신 것일까 내 온몸에서 눈동자가 돋아나기 시작하고 맑은 하늘에서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빌딩 꼭대기에서 배고른 부리를 가진 새 한 마리 딱딱하게 나를 바라본다 눈들이 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사방을 볼 수 있었지만 무엇 하나 도착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아이들은 바닥에 흥건한 피를 핥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눈알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눈길이 되어 있었다

    -「응시」전문, 시집 『어머니는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민음사, 2003. p_19)

 

 

  귀의 이동과 눈의 응시, 음악과 영상의 언어적 환치/ 정재학 시의 무의식적 상징체계(상)(발췌)_ 오형엽/ 문학평론가

  필자는 이 시에서 화자의 "눈동자"와 "새 한 마리"의 "눈"과 "합쳐"져서 생기는 "커다란 눈알" 및 "거대한 눈길"을 '주체의 시선'이 아니라 '세계의 응시'로 해석하고자 한다.2) 라캉은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의 개념을 전유하면서 주체가 세계를 보는 눈인 '시선'과 구별하여 주체를 바라보는 세계 혹은 타자의 눈을 '응시'라고 개념화한다.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은 결구인 "나는 커다란 눈알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눈길이 되어 있었다"에서 서술어가 수동태인 이유와 연결시켜 근거를 뒷받침할 수 있다. "커다란 눈알" 및 "거대한 눈길"은 시적 주체의 능동적 의지의 작용이 아니라 수동적 비의지적 처지의 결과물인 것이다. (···) 이처럼 '세계의 응시'에 의한 '주체의 수동성'은 정재학의 시적 형상화 방식과 상징체계의 질서를 구조화하는 데 중요한 내적 동인으로 작용한다. (p. 시 134/ 론 136-137)

 

  2) 라캉에 의하면 응시는 주체 혹은 시선에 앞서 존재하는 이로 인해, 주체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보이는 존재로서 세계의 스펙트럼 속에서 하나의 얼룩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따라서 주체는 응시를 어떤 위협이나 심문으로 느끼는 경향을 가진다. 응시는 시야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을 상징하며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럽게 접하게 되는 결여의 힘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시선과 응시는 분열된다. 라캉은 응시 개념을 통해 재현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주체의 지배권을 박탈하고 시선 및 자기의식에서 주체가 누려온 특권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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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9월(405)호 <기획 연재 17/ 2000년대 젊은 시인들> 에서

  * 정재학/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모음들이 쏟아진다』 

  * 오형엽/ 1994년『현대시』신인추천작품상 &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비평집『신체와 문체』『주름과 기억』『환상과 실재』『알레고리와 숭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