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빌라/ 전명옥

검지 정숙자 2023. 12. 10. 02:01

 

    빌라

 

    전명옥

 

 

  이 빌라는

  그대가 대취를 해도

  오차없이 찾아들었던 집이었다

 

  어느 이름에 세들어 살다 

  느닷없이 쫓겨난 일은 있었어도

  그의 세간살이들, 그가 바른 벽지들

  그가 설정한 현관문 비밀번호에서조차

  느닷없이 쫓겨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천 길 낭떠러지를 건너와 계약한 집

  농협 대출 창구에서 거북목이 되어서야 겨우

  잔금을 치를 수 있었던 집

  이사한 첫날 아침

  처음 찾아온 햇살을 붙들고

  고맙다고 하염없이 울었던 집

 

  전세로 얻은 빌라가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

  야멸차게 그이 손을 뿌리치고

  망망대해를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결국,

  거실에 누웠다

  이렇게 큰 관이 있었다니

  너저분하게 널린 살림살이가

  천 년을 빛낼 부장품 같았다

 

  그는 이 집의

  영원한 주인이 되었다

  편안했던 처음으로 흘러갔다

     -전문(p.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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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9월(405)호 <신작특집> 에서

  * 전명옥/ 201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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