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전명옥
이 빌라는
그대가 대취를 해도
오차없이 찾아들었던 집이었다
어느 이름에 세들어 살다
느닷없이 쫓겨난 일은 있었어도
그의 세간살이들, 그가 바른 벽지들
그가 설정한 현관문 비밀번호에서조차
느닷없이 쫓겨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천 길 낭떠러지를 건너와 계약한 집
농협 대출 창구에서 거북목이 되어서야 겨우
잔금을 치를 수 있었던 집
이사한 첫날 아침
처음 찾아온 햇살을 붙들고
고맙다고 하염없이 울었던 집
전세로 얻은 빌라가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
야멸차게 그이 손을 뿌리치고
망망대해를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결국,
거실에 누웠다
이렇게 큰 관棺이 있었다니
너저분하게 널린 살림살이가
천 년을 빛낼 부장품 같았다
그는 이 집의
영원한 주인이 되었다
편안했던 처음으로 흘러갔다
-전문(p.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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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9월(405)호 <신작특집> 에서
* 전명옥/ 201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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