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외 1편
송연숙
낙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네
넘어지는 순간
바닥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네
한술 더 떠서
바닥을 몸속으로 구겨 넣는 법을
몸소 실천한다네
햇살이 바퀴가 되어 굴러가는 공지천 가에서
자전거 꽁무니를 잡았다 놓았다 하며 아이를 따라가는 사내
어느 순간, 두 손을 놓고 소리친다네
아빠가 잡고 있어
안심에 의지해 굴러가는 햇살 바퀴
잘 넘어지는 일은
툭툭 바닥을 털고
직립으로 일어서는 일과 같다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엄지손가락을 쳐드는 사내
넘어지고도 웃는 법
넘어지고도 자랑스러운 법
법이란 넘어지거나 서서 달리거나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라네
바닥은 부러지거나
깨져서 피를 흘리지 않는다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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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건축가
소쩍새가 망치를 두드려
후동리 밤하늘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소쩍소쩍 두드린 자리마다
노랗게 별이 쏟아지는 걸 보니
아마 그리움을 건축하는 중인가 봐요
노랗게 황달을 앓으며
어머닌 별처럼 익어가셨어요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잘못 밟아 터져버린 먹구름 솔기
등으로 그 빗줄기를 묵묵히 막아내시던 어머니
아가, 세상사를 조심하거라
아 어머니, 당신의 구부린 등 안쪽은
언제나 따듯한 방이었고, 옷이었고, 밥상이었어요
조심조심 구름을 살피며 발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저도 희끗한 정년의 머리카락이 보여요
잘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흰 구름 되어 떠나신 어머니
자식을 위해 구부렸던 등을
이제야 하얗게 풀어놓으시네요
소쩍새의 망치질 소리를 따라 세다가
솟아나는 별의 이마를 깨끗하게 닦아주다가
내 머리끝으로도 구름 한 자락
하얗게 내려앉는 들판이 보여요
-전문(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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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봄의 건축가』 에서/ 2023. 10. 20. <한국문연> 펴냄
* 송연숙/ 강원 춘천 출생, 2016년 『시와표현』 신인상 수상 &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측백나무 울타리』『사람들은 해변에 와서 발자국을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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