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달팽이는 밤을 건넌다 외 2편/ 김이담

검지 정숙자 2023. 11. 21. 02:42

 

    달팽이는 밤을 건넌다 외 2편

      

     김이담

 

 

  자주 발을 멈추고

  내 몸의 동굴에 나를 숨겨

  밤을 건넌다

  잠망경 같은 두 뿔을 세우면

  덜컹거리는 바람의 창문들

  이명으로 번뜩이는 소리, 소리들

  불안은 끈적이는 점액으로 흘러내리고

  어디선가 가시꽃으로 돋는

  물방울의 향기

  더듬더듬 혀끝에 닿는 길을 끌면

  나를 베는 칼날 같은 풀잎들

  죄어오는 허기를 핥으면 

  축축한 어둠이 끈적인다

  목구멍에서는

  컹컹 개 짖는 소리

  또 어디에 나를 숨겨야 하나

  빈 몸으로 무겁다

     -전문(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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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리에서 일박

 

 

  골골골 물소리를 따다 갔더랬습니다

  산 같던 사내의 병든 몸을 안고 살았다는, 더는

  기도밖에 해 줄 것이 없던 그,

  새처럼 날아간 텅 빈 하늘 뚫린 가슴만

  빈 집으로 벗어놓고 떠났다는

  마을은 밤의 뚝방 아래 있었습니다

  마른 옥수수 대궁을 더듬는

  메꽃처럼 자주 허방을 짚으면

  거기, 딱정벌레 같은 집들이 서너 채

  다가설수록 굽어지는 그녀의 등 뒤로

  수많은 별들이 내려와 그렁하였습니다

  잊었는가 하면 울컥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내달렸다는

  빈 들녘, 물고기자리 물병자리 별들이 줄을 내려

  그 마을을 통째로 들어올렸는데요

  담장도 대문도 없는 자그만한 마당은

  잘름잘름 어둠 한가득

  부추꽃 망초꽃 싣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뒤란으로, 뒤란으로 멀리

  빗금 긋는 별똥별이나 쓸고 있었지요

  누가 그랬지요 호곡장號哭場이 있다고,

  수만 평 고요의 어둠 속에서

  별빛마다 우는 귀 낮은 풀벌레 소리

  나를 끌고 온 설움은 울퉁불퉁

  하늘 산맥 저어가는

  쪽배였습니다

      -전문(p.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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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서 띄우는 편지

 

 

  밀려왔다 쓸려가는 물결 위에서

  발묵發墨처럼 번져오는 달빛이나 건지면서

  떠나간 사랑 곰곰 되씹으면서

  꼬리 쳐 오는 비늘에 꽃잎 풀어 띄우네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우물통 같은 시간을 뒤채이면서

  비밀한 통로, 닿지 않는 주파수에 접신하면서

  수천 개 구멍 난 별빛 들락대면서

  쿨럭쿨럭 나 홀로 젖어서

  등대처럼 깜박이는 먼 별의 사람에게

  끝내 닿지 못할 편지

  바다에 주네

     -전문(p. 24)

 

   * 김이담 시집 『그 벽을 껴안았다』(2022,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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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 2022-여름(32)호 <시집 속에서 2>에서

  * 김이담/ 충북 보은 출생, 2019년 『가온문학』 봄호 '가온이 발굴한 시인' 에 「그 바다의 뒷모습」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