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황치복_근원적 세계, 혹은 궁극적 삶과···(발췌)/ 2월의 달 : 김정임

검지 정숙자 2023. 11. 17. 15:25

 

    2월의 달

 

    김정임

 

 

  온다, 온다, 그날에 동그라미 친

  엄마의 달력은 달의 밥상처럼 환했다

 

  하룻밤만 더 자고 가라고 거듭 붙잡았는데

  후회는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

 

  뒷산 바위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은 끝내 열리지 않고

 

  마지막 마음 어땠을까

 

  웃음과 기다림도 없이

 

  늙어가는 황매화와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

 

  그 긴 날의 외로움을 알았으면서

  담에 또 올게,

 

  그 창가 자리, 흔들리는 당신을 남겨두고

 

  길 잃은 것처럼 나는 어딜 헤매고 다닌 걸까

  후회는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

 

  외로움 다 쏟아내고 더 외로운 하늘에 뜬 달처럼

  2월에 떠나간 달

 

  엄마, 안녕

     -전문-

 

  ▶ 근원적 세계, 혹은 궁극적 삶과 신화적 상상력/ - 김정임 시인의 근작 시세계(발췌) _황치복/ 문학평론가

  이승의 삶의 본질이 외로움이기에 그것을 함께 나누고 덜어주는 것이 앞서 언급한 시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근접한 해답일 수가 있다. 그러니까 타자의 외로움을 나누고 그것을 덜어주는 것이 이승에 온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하룻밤만 더 자고 가라고 거듭 붙잡"는 어머니를 "그 긴 날의 외로움을 알았으면서/ 담에 또 올게"라고 매몰차게 뿌리치고 자신의 욕망이 꿈틀대는 삶의 거처로 회귀한다. "담에 또 올게"라는 대답은 어머니를 위한 위로이기도 하고, 자신을 향한 위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제든 기회는 또 있을 것이라는 예감, 지금이 아니라도 만날 기회는 다시 생길 것이라는 예상은 항상 빗나가기 마련이고, 유한한 어머니의 삶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러한 예감과 결과의 어긋남에서 회한은 생기고, 그것은 남은 자들의 평생을 지배하게 된다. 시적 화자의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은 "2월의 달"이라는 제목에 응축되어 있다. 2월은 30일도 안 되는 가장 짧은 달이며 뭔가 부족한, 완결되지 못한 느낌을 주는 달이다. 그래서 2월에 하늘에 떠 있는 달도 왠지 상실감과 허전함을 품고 있는 달처럼 보인다. 더구나 그러한 2월의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어머니의 분신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외로움 다 쏟아내고 더 외로운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온다, 온다, 그날에 동그라미 친/ 엄마의 달력은 달의 밥상처럼 환했다"는 구절에서 연상되는 환희의 달과 대비를 이루면서 그 극적 효과를 예각화하고 있다. 남은 것은 남은 자들의 후회와 회한일 터인데, "길 잃은 것처럼 나는 어딜 헤매고 다닌 걸까/ 후회는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라는 표현 속에 그러한 시적 화자의 정동이 응축되어 있다. (p. 시 174/ 론 186-187) 

 

   ---------------------

  * 『미네르바』2023-가을(91)호 <신작소시집/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김정임/ 2002『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마사의 침묵』외 3권

  * 황치복/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 2020년 『열린시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저서『동아시아 근대 문학사상의 비교 연구』『현대시조의 폭과 깊이』『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시선』등, 역서『나츠메 소세키 문명론』『나츠메 소세키 문학예술론』